행동당 (리소르지멘토)
Action Party (Risorgimento)
이탈리아 통일 운동(리소르지멘토) 시기에 주세페 마치니가 1853년 세운 공화주의·민주주의 정당. 민중 봉기로 통일을 이루고 군주정 대신 공화국을, 제한 선거 대신 보통선거를 세우자고 했으며, 가리발디의 원정을 뒷받침했다. 카보우르를 중심으로 사보이 왕가와 손잡은 온건파와 맞섰으나 통일의 주도권을 넘겨주었고, 1867년 멘타나 패배 뒤 마치니가 해산했다. 이탈리아 최초의 조직된 정당으로 꼽히며, 1942~1947년의 같은 이름 정당과는 다르다.
상세
마치니의 당
1848년 혁명이 실패한 뒤 마치니의 청년 이탈리아는 이탈리아 국민협회로 바뀌었고, 마치니는 1853년 3월 소책자 「이탈리아인들에게」를 내며 이를 행동당으로 다시 세웠다. 같은 해 2월 밀라노 봉기가 실패했는데도 그는 해방의 떨림이 대중에게 내려왔다고 보고, 무장 부대의 거듭된 행동으로 반도 전체에 불을 붙이는 민중 봉기를 호소했다. 그러나 카를로 피사카네가 목숨을 잃은 1857년 사프리 원정과 제노바·리보르노 봉기는 모두 실패했다.
온건파와의 대결
행동당은 1859~1860년 가리발디의 원정을 지지했고, 1860년에는 붉은 셔츠단의 창설에 돈을 댔다. 동시에 사보이 왕가와 카보우르 둘레에 모인 온건파에 맞서, 왕의 전쟁과 국민투표, 병합, 이탈리아의 「피에몬테화」에 반대하고 민중 봉기에 의한 통일과 보통선거를 주장했다. 마치니파는 노동자 협회, 공제조합, 협동조합, 민중 학교 같은 이탈리아 노동운동의 첫 조직들을 만들었고, 1861년 기관지 『루니타 이탈리아나』를 냈다. 1867년 로마를 얻으려던 멘타나 전투가 실패하자 마치니는 당을 해산했다. 이 전통은 뒤에 이탈리아 공화당과 1942년에 같은 이름으로 세워진 반파시즘 정당 행동당(1942~1947)에 영감을 주었다.
그람시의 분석
안토니오 그람시는 『옥중수고』에서 행동당을 헤게모니 문제의 핵심 사례로 다루었다. 그에 따르면 행동당은 사실상 카보우르와 국왕에게 「간접적으로」 지도당했고, 온건파는 1870년과 1876년 뒤에도 행동당을 계속 이끌었다. 그람시는 농업 정책으로 농민을 끌어들여 도시와 농촌을 이은 프랑스의 자코뱅과 달리, 행동당이 토지 문제 같은 민중적 요구를 강령에 받아들이지 못해 농민 대중과 결합하지 못했다고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