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은행
Bank of France
1800년 1월 18일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민간 자본으로 세운 프랑스의 발권 은행이자 중앙은행. 1803년 파리, 1848년 전국의 은행권 발행 독점권을 얻었고, 1936년 정부 통제 아래 들어가 1945년 국유화되었다. 1999년부터 유로체제의 일원이다. 파리 코뮌은 은행을 접수하지 않고 대부만 받았으며, 엥겔스와 레닌은 이를 코뮌의 심각한 실수로 꼽았다.
상세
은행은 집정관 보나파르트 아래 공적 지위를 가진 민간 주식회사로 출발했다. 1803년 주주총회가 승인한 섭정 위원회는 혁명 전부터 프랑스 금융을 쥐어 온 「오트 방크」의 은행가들이었다. 1806년 법은 총재와 부총재 둘을 황제가 임명하게 했고, 1808년 기본 규약은 1936년까지 은행 운영의 틀이 되었다. 1848년 전국의 발권 독점을 얻은 뒤 은행은 금융 안정의 상징이 되었다.
1870년 8월 은행의 금 보유고는 이미 안전을 위해 파리 밖으로 옮겨져 있었지만, 1871년 3월 티에르 정부는 금화 8,800만 프랑과 은행권 1억 6,600만 프랑을 미처 챙기지 못하고 베르사유로 떠났다. 은행은 직원으로 이루어진 국민방위군 500명이 지켰다. 코뮌 일부는 준비금을 사회 사업에 쓰자고 했지만 재정 담당 주르드는 준비금이 없으면 통화가 무너진다며 반대했다. 코뮌이 은행 대표로 보낸 샤를 벨레는 은행이 코뮌에 날마다 40만 프랑을 빌려주게 하는 데 그쳤다. 티에르는 독일의 50억 프랑 배상금을 치르고 프랑을 지키려면 준비금이 필요하다고 보아 이를 승인했다.
엥겔스는 1891년 서문에서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코뮌이 프랑스 은행의 문 앞에 공손히 멈춰 선 경건한 외경심이며, 이는 심각한 정치적 실수이기도 했다고 썼다. 코뮌 손에 든 은행은 인질 1만 명보다 값진 것이었고, 프랑스 부르주아지 전체가 코뮌과 강화하라고 베르사유 정부를 압박하게 했을 것이라는 것이다. 레닌은 1908년 「코뮌의 교훈」에서 프롤레타리아트가 「수탈자를 수탈」하지 않고 은행 같은 기관을 접수하지 않은 것을 승리의 열매를 망친 두 실수 가운데 하나로 들었다.
은행은 1차 세계대전 뒤 금 보유를 크게 늘려 한때 세계 금의 28.3%를 가졌다. 1936년 인민전선 정부 아래 정부 통제를 받게 되었고, 1945년 샤를 드골 정부가 국유화했다. 1993년 법으로 1994년 정부로부터 독립했으며, 1999년 유럽 중앙은행 체제에 들어가 통화 정책의 결정권을 유럽 중앙은행에 넘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