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 재정 체계
Budgetary finance system (Cuba)
체 게바라가 이끈 쿠바 공업부가 1960년부터 다듬어 쓴 국영 기업 관리 방식. 비슷한 기술 기반이나 같은 생산 목적을 지닌 공장들을 하나의 통합 기업으로 묶고, 그 계획과 경영을 중앙 기관이 직접 통제했다. 기업은 제 자금도 은행 신용도 갖지 않았고, 수입은 곧바로 국가 예산으로 들어갔으며, 화폐는 기업 활동을 가격으로 비추는 계산 단위로만 쓰였다. 기업에 재정 자율과 물질적 자극을 주는 소련식 경제 계산제(호즈라스초트)와 맞섰고, 1963~1965년 쿠바 대논쟁의 한쪽 축이 되었다.
상세
체계의 내용
게바라는 1964년 2월 「예산 재정 체계에 관하여」에서 이 체계가 「국영 기업의 예산 재정 체계를 규정하는 법」으로 공식 승인되었고, 공업부 내부 작업에서 자라났으며, 1960년 무렵부터 형태를 갖추었다고 썼다. 두 체계의 가장 직접적인 차이는 기업의 개념이었다. 예산 재정 체계에서 기업은 공장들의 묶음이었고, 경제 계산제에서 기업은 법인격을 지닌 생산 단위였다. 예산 재정 체계 기업은 은행에서 계획에 따라 지출 계정과 임금 계정의 돈을 꺼내 썼지만, 예금은 곧바로 국가의 것이 되었다. 반면 다른 사회주의 나라의 기업들은 은행에 제 자금을 두고 이자를 내며 신용을 받았다.
자극과 의식
게바라는 두 체계를 가르는 근본 차이로 재정 자율과 물질적 자극에 대한 태도를 들었다. 그는 물질적 자극의 객관적 필요는 부정하지 않지만 그것을 기본 지렛대로 쓰는 데는 반대한다고 했다. 물질적 자극은 자본주의에서 온 것이고 사회주의에서 죽어야 할 것이며, 직접적인 물질적 자극과 의식은 서로 모순된다는 것이었다. 그는 가치법칙을 계획에서 의식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는 소련 『정치경제학 교과서』의 주장에도 반대했다.
논쟁과 그 뒤
대외무역부 장관 알베르토 모라, 국가농업개혁청(INRA)을 이끈 카를로스 라파엘 로드리게스, 프랑스 경제학자 샤를 베텔하임은 경제 계산제 쪽에 섰고, 에르네스트 만델은 게바라 편에서 베텔하임을 비판했다. 국립은행 총재 마르셀로 페르난데스 폰트와는 은행의 역할을 두고 따로 논쟁이 벌어졌다. 1987년 로드리게스는 체의 체계가 더 진보적이고 평등주의적이었다고 인정하면서도 경제 계산제가 쿠바의 조건에 더 잘 맞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