Български земеделски народен съюз (БЗНС) · 1899–

불가리아 농민민족동맹

Bulgarian Agrarian National Union

1899년 농민의 직업 단체로 출발해 곧 정당이 된 불가리아의 농민운동. 제1차 세계대전 뒤 알렉산다르 스탐볼리스키의 단독 정부를 세웠으나 1923년 6월 9일 쿠데타로 무너졌다. 이후 여러 파로 갈라졌고, 1945~1947년 니콜라 페트코프가 이끈 주류는 공산화에 맞서다 해산되었다. 한 분파는 공산 체제의 위성 정당으로 남았다.

상세

불가리아어 출처에 따르면 농민운동은 1890년대 말 시골 교사·농학자 등이 만든 지역 단체들에서 시작되었고, 1899년 자유당 정부의 현물 십일조 부활 시도에 반발하며 활발해졌다. 1899년 12월 28~30일 플레벤에서 「불가리아 농민동맹」 창립 대회가 열렸고 얀코 자부노프가 지도자가 되었다. 이 조직은 처음에 직업·계몽 단체를 표방했으나, 1901년 제3차 대회에서 선거에 후보를 내기로 하면서 정당이 되었다. 젊은 언론인 알렉산다르 스탐볼리스키가 「신분 이론」을 내놓고 1905년 첫 강령을 썼다. 동맹은 군주의 개인 통치와 군국주의에 반대했고, 제2차 발칸 전쟁과 제1차 세계대전 참전에 강하게 반대했다.

1919년 8월 총선에서 최다 의석을 얻어 스탐볼리스키가 연립정부를 이끌었고, 1920년 5월 농민동맹 단독 정부가 들어섰다. 정부는 몇 해 동안 100개가 넘는 법을 만들어 토지 소유 상한, 의무 노동제, 의무교육 연장, 누진세 등을 도입했다. 그러나 반도시적 수사, 준군사 조직 「오렌지 근위대」의 폭력, 부패와 행정 무능으로 엘리트 대부분을 적으로 돌렸다. 1923년 6월 9일 쿠데타로 정부가 무너졌고, 스탐볼리스키와 많은 동맹 활동가가 살해되었다.

1926년 이후 동맹은 디미타르 기체프가 이끈 「브라브차 1」파와 우파 「오렌지」파 등으로 갈라졌다. 브라브차 1파는 1931년 중도 연합 「인민블록」으로 정부에 참여했고, 1932년 망명자 출신들이 「플라드네」파를 만들었다. 1934년 5월 19일 쿠데타 뒤 동맹은 다른 정당과 함께 금지되었다. 플라드네파는 공산당과 협력해 1943년 8월 조국전선 전국위원회에 참여했다.

1944년 9월 9일 쿠데타 뒤 동맹은 합법화되었고, G. M. 디미트로프가 서기장으로 뽑혔으나 소련 대표의 압력으로 사임해 니콜라 페트코프가 뒤를 이었다. 1945년 5월 게오르기 트라이코프 등 친공산 세력이 별도 대회를 열면서 동맹은 친공산 「관제 농민동맹」과 「농민동맹-니콜라 페트코프」로 갈라졌다. 1947년 공산당이 야당을 청산하는 과정에서 페트코프의 농민동맹은 해산되었다. 관제 동맹은 1947~1974년 트라이코프, 1974~1989년 페타르 탄체프가 이끈 위성 정당으로 남았다. 1989년 뒤 그 전통을 잇는 여러 정당이 생겨 1990년대 정부에 참여하기도 했으나 이후 영향력이 줄었다.

소속 인물

관련 인물

관련 역사 사건

출처

  1. bg.wikipedia.org
  2. 위키백과 (영문)
  3. bg.wikipedi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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