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ité révolutionnaire central (CRC) · 1881.06–1898

중앙혁명위원회 (프랑스)

Central Revolutionary Committee (France)

1881년 오귀스트 블랑키가 죽은 뒤 그의 투쟁을 잇기 위해 에밀 외드, 에르네스트 그랑제, 에두아르 바양이 세운 프랑스의 블랑키파 사회주의 정당. 1888년 외드가 죽은 뒤 바양이 이끌었고, 1889년 불랑제주의를 둘러싼 분열을 겪은 뒤 노동조합 활동과 총파업에 무게를 두었다. 1898년 혁명사회당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상세

중앙혁명위원회는 1881년 6월 에밀 외드가 블랑키의 투쟁을 잇겠다며 세웠고, 외드와 에르네스트 그랑제, 에두아르 바양이 사실상 이끌었다. 혁명적 행동주의와 음모 취향, 무신론, 프랑스 혁명의 자코뱅주의를 잇는 애국주의, 사회주의를 아우르는 블랑키파의 노선을 따랐다. 당원은 추산에 따라 400명에서 4,000명으로 주로 파리 동부와 북부·동부 교외에 있었고, 다른 사회주의 흐름에게서 따돌림받는 작은 집단이었다. 처음에는 1879년 세워진 프랑스 사회주의노동자당 연맹을 보완하는 조직이었으나, 1881년 10월 랭스 대회에서 연맹이 개량주의 쪽으로 기울자 독립 정당이 되었다.

1885년 무렵 바양이 위원회를 다잡으면서 단체는 공화국에 적응하며 경제 문제를 다루기 시작했고, 파리에서 급진파와 선거 연합을 맺어 1884년 바양을 시 의회에 들여보냈다. 기관지 《신도 주인도 없다》는 한 해에 한 번 나오는 소식지에 그치다 1885년 끊겼고, 앙리 로슈포르가 편집장인 《랭트랑지장》이 블랑키파의 대변지 노릇을 했다. 1888년 외드가 죽자 바양이 지도자가 되었다.

바양은 불랑제 장군의 운동을 두고 어느 편도 들지 않는 태도를 취했다. 1889년 8월 총선을 준비하던 중 그랑제가 벨빌에서 친구 로슈포르에 맞설 블랑키파 후보를 내지 말자고 했다가 28대 28로 과반을 얻지 못하자, 그랑제와 지지자들은 위원회를 떠나 혁명적 사회주의 중앙위원회를 세웠다. 로슈포르, 그랑제, 에르네스트 로슈 같은 간부와 활동가가 불랑제를 따라 떠나면서 위원회는 약해졌다.

분열 뒤 바양은 위원회의 무게를 노동조합 활동과 총파업 사상으로 옮겼다. 1896년 장 알레만의 혁명적 사회주의노동자당에서 쫓겨난 의원과 지역 간부들이 들어와 1897년 혁명공산주의동맹으로 모이면서 위원회는 힘을 얻었고, 1898년 혁명사회당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마르셀 상바도 이 위원회에 들어가 혁명사회당의 지도자가 되었다.

소속 인물

관련 인물

출처

  1. 위키백과 (영문)
  2. fr.wikipedia.org
  3. fr.wikipedia.org
  4. fr.wikipedia.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