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체제 (財閥體制) · 1960년대–현재(체제 성립은 1980년대 전반으로 보는 견해)

재벌체제

Chaebol System

소수 가족 중심 기업집단(재벌)이 국민경제를 주도하는 한국 특유의 정치경제 질서. 「재벌들이 한 나라의 국민경제를 주도하게 될 때 우리는 그것을 재벌체제라고 부른다」는 규정이 핵심 기준이다. 국가가 정책금융·차관보증 등 특혜를 주고 재벌이 성장의 과실을 가져가는 국가-재벌 지배 연합으로서, 성립 시기를 두고는 1960년대 형성기와 1980년대 전반 성립기를 함께 기록한다. 성장 이익은 사적으로 집중되고 위험과 비용은 사회 전체로 전가되었다.

상세

정의

레디앙의 분석은 재벌을 특정 개인이나 가족을 소유의 정점으로 하는 독점자본의 한 형태로 규정하고, 재벌이 한 나라의 국민경제를 주도하게 될 때 그것을 재벌체제라고 부른다고 정의한다. 즉 가족 지배 기업집단이 국민경제를 장악했는지가 체제 성립의 기준이다. 같은 분석은 상위 20대 재벌의 몫이 총 매출액이 아니라 부가가치 생산임을 명시적으로 주의하도록 요구한다. 위키백과는 재벌을 개인이나 가족이 경영하고 지배하는 대규모 산업 기업집단으로, 여럿이 다각화된 계열사를 거느린 형태로 서술하며 한국의 수십 개 가족 지배 기업집단이 이 정의에 해당한다고 본다. 이병천은 군사정권이 은행을 국유화하고 정책금융과 차관 지불 보증으로 재벌에 막대한 특혜를 준 결과를 국가-재벌 지배 연합, 국가-재벌-은행 삼각 밀착체제로 정식화하며, 한국 개발경제의 빛과 그림자가 여기에 집중되었다고 본다. 어원은 일본어 자이바쓰(財閥)이고, 영어에는 적어도 1972년부터 차용되었다.

역사

1950년대에도 삼성·삼호·개풍 등 기업집단이 있었고 럭키·대한산업·동양·현대·쌍용 등이 재벌로 부상할 준비를 하고 있었으나 수가 적고 내부 규모가 작았으며 성장도 느렸다. 1961년 박정희의 집권 이후 대기업 육성 정책이 급속한 산업화를 추동했고,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은 신규 투자를 향한 산업정책을 설정했으며 재벌에 은행 부문 대출이 보증되었다. 재벌은 외자 도입, 특혜, 해외 기술 접근으로 성장했고 생산은 1950~60년대 가발·섬유에서 1970~80년대 중화학·방위산업으로, 1990년대에는 전자·첨단기술로 다각화되었다. 일제 강점기에는 식민 정부가 현지 실업가를 포섭했고 경방 같은 소수 재벌이 식민지기에 등장했으며, 옛 일본인 자산을 인수한 기업들이 뒤에 재벌로 성장해 이승만 정부와 긴밀히 결탁했다는 서술도 있다. 다만 삼성은 옛 일본인 자산이나 기업을 받지 않고 1953년 제일제당, 1954년 제일모직을 세웠다는 점에서 다른 재벌과 달랐다.

대한민국문화대백과사전은 제도적 형성 과정을 정리한다. 미군정기와 1948년 정부 수립 전후의 적산 우선 불하, 원조 물자 우선 배정, 은행 대출 우대가 1950년대 재벌의 물질적 기초를 이루었고, 원조 원료와 자본재에 의존한 삼백산업(제분·제당·면방직)이 부의 축적을 가능하게 했다. 1960년대 초 재벌로 성장한 기업들은 신생 기업이 아니라 약 10년의 사업 경험을 가진 기업들이었다. 5·16 군사정권은 1960년대 중반부터 수출산업을 지원하고 경험 있는 소수 실업가에게 지원을 집중했으며, 10대 재벌은 저임금 노동과 국가 지원으로 경공업 기반을 다졌다. 1970년대 중화학공업화와 종합무역상사 육성으로 재벌은 핵심 산업을 장악하고 실질적 경제 지배력을 확립했다. 1960년대 초부터의 국가 주도 '압축적 자본주의화', 특히 1970년대 중후반의 중화학공업화가 특정 기업을 선별하는 우대 정책을 통해 이 발전을 가속했다.

레디앙은 가족 지배 기업집단이 총수를 정점으로 본격 형성되어 한국 경제를 주도하게 된 시점, 즉 체제 성립을 학계 일반의 견해로 1980년대 전반에 둔다. 상위 20대 재벌의 부가가치가 GDP에서 차지한 몫은 1973년 7.1%에서 1983년 16%로 올랐고, 하청 중소기업 비중은 1978년 18.2%에서 1987년 48.5%로 뛰었다. 1980년대에 재벌 시장지배의 기반은 제도적 진입장벽에서 기술적 요인으로 이동해 기술 우위에 기초한 현대적 독점이윤이 확보되었다. 다만 은행 신용이 여전히 국가의 강한 통제 아래 있어 산업 독점자본과 은행자본이 결합한 고전적 의미의 금융자본은 아직 형성되지 않았기에 체제는 취약했다. 1970년대 후반 중화학공업 과잉투자와 세계 불황, 제2차 석유 파동이 낳은 위기는 자본 집중을 통한 구조조정으로 처리되었고, 주요 중화학 부문의 통합과 부실 기업의 제3자 인수로 1980년대 내내 재벌 지배력이 강화되었으며 중소기업과의 하청 관계 및 금융 부문 진출이 진행되었다.

1980년대 중후반의 '3저 호황'과 금융 자유화는 재벌을 1980년대 중반~1990년대 초 진정한 금융자본으로 전환시켰다. 비은행 부문의 제도화와 재벌의 직접 진출로 국가 신용 배분에서 벗어난 안정적 장단기 자금을 확보했고, 대외 개방 압력(1988년 이후 미국의 압력, 김영삼의 세계화 정책, OECD 가입)은 국제시장에서 단기 자본을 자유롭게 끌어올 수 있는 종금사가 대량 허가되면서 정점에 이르렀는데, 이는 1997년 위기의 근본 원인의 하나였다. 이병천은 1997년 IMF 외환위기를 대내적으로는 재벌과 깊이 얽힌 무책임한 시장경제의 누적된 모순, 대외적으로는 미국-국제금융자본-IMF 복합체의 압력이 결합한 것으로 보며, 대기업 연쇄 부도로 나타났다고 본다. 김대중 정부의 재벌 개혁(5+3 원칙)은 개혁적이었으나 보완 3원칙이 명목에 그치는 등 중도에 끝났고, 후반기 불황과 재벌 규제완화 공세 속에 개혁 노선이 급속히 후퇴해 지정기업집단제와 총액출자한도제가 형해화되고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의 분리가 훼손되었다. 위기 이후 한국 경제는 미국식 자본주의를 모델로 한 완전 개방적 신자유주의 체제로 이행했고 재벌은 국제금융자본과 '적응적 파트너십'을 형성했다. 1997년 아시아 위기는 태국 바트화에 대한 투기적 공격으로 시작해 동아시아 전역의 금융 자유화를 타고 확산되었고 원화의 하락 나선을 낳았다. 같은 시기 정부의 재벌 개혁 정책은 경영 투명성, 상호지급보증 폐지, 부채비율 축소를 위한 금융 구조조정, 핵심 부문에 집중하는 사업 교환, 경영진 책임 강화를 포함했으며, 1998년 1월 대통령이 5대 재벌과 계열사 절반 축소 및 핵심 부문 교환에 합의해 '핵심 기업 전문화 제도'가 도입되고 신용관리와 총액투자 규제가 완화되었다.

레디앙은 위기 이후 국면을 재벌과두체제기(IMF 위기~현재)로 구분한다. 위기 이후 재벌의 경제 내 비중과 영향력은 약화되기는커녕 더 확대되었고, 경제력이 살아남은 상위 소수 재벌에 집중되면서 재벌 간 격차도 벌어졌다. 살아남은 삼성·현대·LG·SK는 지배력을 크게 강화했다. 이러한 분석은 국가가 사실상 금융자본가 집단이 선출한 위원회라는 부하린의 금융과두 지배론과 연결된다.

구분

대한민국문화대백과사전은 재벌을 독점자본의 여러 형태 속에 위치시킨다. 카르텔은 동일·유사 산업 간 경쟁을 제한하거나 완화하는 협정이고, 트러스트는 기업들이 개별적 독립성을 잃고 합병해 시장을 독점하는 형태이며, 콘체른은 구성 기업이 법적으로 독립적 법인으로 남으면서 주식 보유·대출·인사 관계로 조정되는 자본 결합이다. 재벌은 콘체른이 카르텔이나 트러스트보다 고도로 발달한 독점 형태다. 같은 자료는 일본 자이바쓰가 제2차 세계대전을 전후해 자이바쓰와 게이레쓰로 분화된 점을 지적하는데, 자이바쓰에서는 재벌 가족이 사실상의 대주주로서 계열사에 대한 배타적 지배권을 가지는 반면 게이레쓰는 사장회를 중심으로 상호 주식 보유를 하며 사실상의 대주주가 없다. 위키백과도 재벌을 전전 자이바쓰의 후신인 게이레쓰와 구분한다. 재벌의 지배는 대체로 가족 기반인 반면 게이레쓰는 전문 경영진이 경영하고, 재벌 은행은 지배주식 매입이 금지된 반면 게이레쓰는 계열 은행을 통해 거의 전면적인 신용 접근을 누렸으며, 재벌은 수출 생산을 위한 자회사를 세운 반면 게이레쓰는 외부 하청업체를 활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세계 비교도 제시된다. 제2차 세계대전 이전 중국에는 상하이를 중심으로 하는 저장(닝보) 재벌이 있었고 1949년 이후 대부분의 자산이 몰수되면서 해체되었다. 로스차일드는 영국과 프랑스의 금융기관에 걸쳐 있었고, 미국에는 멜런·모건·록펠러·듀폰·쿤로브 등 '빅 에이트'와 지역 그룹이 있었으며, 인도에는 185개 기업을 지배한 타타를 포함한 5대 재벌이, 독일에는 크루프 자본이 있었다.

레디앙은 재벌과 재단(그룹·금융자본 그룹)을 구분한다. 양자는 소유관계로 기업집단을 이루지만 재단은 피라미드 정점에 자연인이나 가족만이 아니라 법인이 설 수 있어 재벌을 포괄하는 더 넓은 개념이다. 재벌은 독점자본의 역사적 네 유형 가운데 대략 첫째나 둘째 유형에 대응하며, 정점에 자연인이나 가족이 있다는 점으로 규정된다. 같은 분석은 재벌의 가족·소유자 중심 소유구조를 서구의 넷째 유형(대부분의 미국 대기업처럼 개별 소유자가 지배하지 않고 비슷한 규모의 주요 주주 여럿이 결합해야 지배가 성립하는 구조)과 대비하며, 그런 구조에서는 배타적 소유자 가족 피라미드와 재벌과두체제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본다.

관계

이병천은 국가-재벌 관계를 지배 연합으로 서술한다. 국가가 정책금융과 차관 지불 보증으로 특혜를 주고, 재벌이 성장의 주요 과실을 가져가며 재벌의 손실은 사회와 전체 인민에게 전가되었다. 노동은 막사식 탄압 아래 「성장 우선, 분배 나중」 체제에 종속되었고, 재벌이 성장하는 동안 중소기업은 저발전되었다. 그는 민주화 아래에서 경제 자유화가 '재벌이 마음대로 하는 시장경제'를 낳아 권력이 약화된 국가와 강한 재벌 쪽으로 이동했고, 국가가 물러난 뒤에는 재벌을 규율할 기구가 없었다고 덧붙인다.

레디앙은 재벌과 정치권력의 관계가 과두적이 되었다고 본다. 국가권력은 일반적으로 지배계급 이익의 위원회이지만, 재벌과두체제에서는 소수 재벌이 정치권력을 자기 영향 아래 둔다. 이는 일반적 독점자본 지배와 구별되는 극소수 개별 독점자본의 지배이며, 한국 국가는 자본가계급 일반이 아니라 소수 상위 재벌의 이익을 대표하는 위원회가 되었다. 「삼성공화국」 현상이 그 예이고 IMF 위기 이후 삼성의 재벌적 지위는 급격히 상승했다. 2007년 삼성의 비리를 폭로한 김용철은 1997년 무렵 삼성의 위상이 훨씬 낮아 법원과 정부와 언론을 통째로 장악할 힘이 없었으나, 1997년 위기로 경쟁자들이 무너지면서 1위 재벌이 되었고 '아무도 통제하지 못하는 거대 권력'이 되었다고 썼다. 레디앙은 2000년대에 삼성이 정치·관료·언론·사법·종교·시민사회로 영향력을 확장했고 '삼성 장학' 네트워크를 관리하기 위한 비자금이 이미 4조 원에 이르렀다고 덧붙인다.

위키백과도 재벌의 정치 참여를 기록한다. 1988년 현대중공업 사장 정몽준이 국회의원에 당선되었고 다른 기업 지도자들도 비례대표로 진출했다. 많은 가족 경영 재벌이 지배주주에게 유리하고 일반 투자자에게 불리한 낮은 배당 성향과 지배구조 관행으로 비판받아 왔다. 역사적으로 대부분의 성공적인 정치 선거는 재벌의 지원으로 승리했고 각 새 행정부는 재벌 활성화에 맞춘 공약을 내세웠다는 서술도 있다.

사례

위키백과에 따르면 30대 재벌 가운데 11곳이 1997년 금융위기 중 붕괴했다. 위기 전 일곱 곳이던 주요 자동차 제조사는 이후 두 곳만 온전히 남았고 두 곳은 GM과 르노 아래 축소된 규모로 존속했다. 대우그룹의 1999년 중반 붕괴는 약 800억 달러의 미상환 채무를 남긴 당시 사상 최대 기업 파산이었다. 조사 과정에서 재벌의 광범위한 부패, 특히 분식회계와 뇌물이 드러났다. 삼성의 2019년 매출은 한국 GDP의 약 17%였고, 2023년 상위 4대 재벌(삼성·SK·현대·LG)은 GDP의 40.8%, 상위 30대는 76.9%를 차지했다. 2025년 5월 1일 기준 자산 순위는 삼성 589.1조, SK 363조, 현대자동차 306.6조, LG 186.1조 원이었다. 한편 같은 자료의 재벌이 GDP의 80%를 낸다는 서술은 출처가 제시되지 않았고 이 2023년 수치와 어긋난다.

레디앙은 과두체제기의 삼성 집중을 보여주는데, 삼성의 자산은 상위 5대 재벌의 35%, GDP의 20%로(1997년 26%·10%에서 상승) 올랐고 매출은 상위 5대의 48%, GDP의 20%(1997년 29%·15%에서 상승)에 이르렀으며, 2017년 2분기 삼성전자의 순이익은 나머지 KOSPI 상장사 전체 순이익 합계의 38.18%였다. 김용철은 삼성이 '아무도 통제하지 못하는' 1위 재벌이 되었다고 평가했다.

대한민국문화대백과사전은 위기 이후의 사례와 효과를 정리한다. 구조조정을 거쳐 2000년대에는 삼성·LG·현대·SK 같은 세계적 기업이 등장했다. 긍정적 효과로는 재벌이 내부 현금흐름을 활용한 점, 외부 충격을 완충한 점(1997년 위기 때 상위 10대 재벌 매출 감소율 39% 대 전국 43%), 경쟁력 있는 세계적 기업에 기여한 점이 제시된다. 부정적 효과로는 문어발식 확장으로 중소기업의 자생적 성장을 저해한 점, 담합을 동반한 독점·과점 지위를 만든 점, 총수가 핵심 경영에 직접 참여하는 하향식 조직에서 오는 비효율이 제시된다. 2009년 상위 10대 기업이 한국 수출의 37.3%, 상위 50대가 60.9%를 차지했다.

시기 설정에 관한 유의

이 항목은 형성과 체제 성립을 구분한다. 1960년대는 국가 주도 산업화 아래 재벌 형성이 시작된 시기이고, 가족 지배 기업집단이 국민경제를 주도하게 된 체제 성립은 1980년대 전반으로 보는 견해가 학계 일반의 견해로 제시되어 있다. 두 시기는 모두 문헌에 근거하므로 어느 하나로 합치지 않고 병기한다. 체제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것으로 서술되며, 위키백과의 재벌이 GDP의 80%를 낸다는 서술은 출처가 없고 같은 문서의 2023년 수치와 어긋나므로 구체적 연도별 수치를 우선한다.

출처

  1. peoplepower21.org 이병천, 「재벌체제의 빛과 그림자」 (2004): 국가-재벌 지배 연합과 국가-재벌-은행 삼각 밀착체제로 한국 개발국가를 분석하고 재벌체제의 성립·전개·신자유주의적 재편을 비판적으로 서술.
  2. redian.org 「한국 재벌의 진화과정에 대하여」 (레디앙): '재벌들이 한 나라의 국민경제를 주도하게 될 때 우리는 그것을 재벌체제라고 부른다'고 정의하고, 1980년대 전반 성립기부터 IMF 위기 이후 재벌과두체제기까지의 역사적 전개를 분석.
  3. 위키백과 (영문) Wikipedia: chaebol의 어원, 박정희 정부 하 형성 과정, 정책금융·차관보증을 통한 성장, 1997년 위기 이후 구조조정과 경제력 집중 심화에 대한 사실적 기반.
  4. redian.org
  5. peoplepower21.org
  6. 위키백과 (영문)
  7. encykorea.aks.ac.kr
  8. 위키백과 (한국어)
← 용어 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