Крымская АССР · 1921–1945

크림 자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Crimean Autonomous Soviet Socialist Republic

1921년 10월 18일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 안에 세워진 크림반도의 자치 공화국. 처음 이름은 「자치 크림 사회주의 소비에트 공화국」이었고 1936년 지금의 표제어 이름으로 바뀌었다. 크림 타타르어와 러시아어를 국가 언어로, 크림 타타르와 카라임인을 원주민으로 인정했으나, 1944년 크림 타타르 전체가 강제 이주된 뒤 1945년 6월 30일 크림 주로 격하되었다.

상세

백군이 1920년 말 크림에서 철수한 뒤, 1921년 5월 말부터 8월 말까지 당 중앙위원회·전러시아 중앙집행위원회·인민위원회의의 전권 위원회가 크림의 전후 문제를 조사했다. 10월 18일 법령은 공화국을 장코이·예우파토리야·케르치·세바스토폴·심페로폴·페오도시야·얄타의 일곱 구로 된 크림반도의 경계 안에 세우고 북쪽 경계는 따로 다루기로 했다. 11월 10일 첫 헌법이 크림 타타르어와 러시아어를 국가 언어로 정했고, 소비에트 대회가 뽑은 크림 중앙집행위원회 의장은 유리 가벤, 첫 인민위원회의 의장은 사히브 기레이 사이드-갈리예프였으며 벨리 이브라이모프가 노농 감찰 인민위원을 맡았다. 민족인민위원부 기관지는 1921년 10월 25일, 크림을 주로 두자는 의견도 많았지만 오랫동안 몰락해 온 크림 타타르 농촌의 신뢰를 얻으려고 원주민에게 넓은 권리를 주기로 했다고 썼다. 공화국은 기근 속에서 출발했다. 이브라이모프는 기근 사망자 11만 명 가운데 7만 6천 명이 크림 타타르였다고 추산했다. 코레니자치야 정책 아래 1930년대 20개 구 가운데 6개가 크림 타타르 민족 구, 2개가 독일인 구, 2개가 유대인 구, 1개가 우크라이나인 구였다. 1924~1928년 중앙집행위원회 의장을 지낸 이브라이모프는 유대인 이주 계획에 맞서다 1928년 처형되었고, 영어 출처는 그의 처형이 코레니자치야가 끝나 가는 시작이었다고 본다.

공화국은 1936년 12월 5일 「크림 자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크림에 유대인 자치를 세우려는 시도는 두 차례 실패했다. 1941~1944년 독일에 점령되었던 크림이 해방되자, 소련 정부는 크림 타타르 전체를 협력자로 몰아 스탈린과 베리야의 국가방위위원회 명령으로 1944년 5월 18일부터 강제 이주시켰고, 6월에는 아르메니아인·불가리아인·그리스인도 내보냈다. 영어 출처는 독일이 만든 부대에서 복무한 크림 타타르를 9,225명으로 적는다. 1945년 6월 30일 소련 최고소비에트 간부회 명령으로 자치 공화국은 크림 주로 바뀌었고, 1944~1949년 지명의 90% 이상이 바뀌었다. 크림 주는 1954년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넘어갔다. 크림 타타르의 권리는 1967년 법령으로 회복되었지만 귀환은 소련 말기에야 허용되었고, 1989년 소련 최고소비에트는 강제 이주를 범죄적이고 불법적이었다고 인정했다. 1991년 2월 12일 주민투표 결과에 따라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안에서 자치 공화국이 되살아났고, 1992년 2월 26일 크림 공화국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관련 인물

관련 역사 사건

출처

  1. 위키백과 (영문)
  2. 위키백과 (러시아어)
  3. 위키백과 (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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