Отечествен фронт (ОФ) · 1942.07.17–1990

조국전선 (불가리아)

Fatherland Front (Bulgaria)

1942년 7월 17일 모스크바의 불가리아 노동자당(공산당) 지도부가 강령을 발표해 세운 불가리아의 반파시즘 연합. 공산당과 정치 서클 즈베노, 농민동맹 플라드네파, 사회민주당 일부, 무소속 인사가 참여했다. 1944년 9월 9일 쿠데타로 정권을 잡아 키몬 게오르기예프 정부를 세웠고, 1947년부터 사실상 유일한 합법 정치 조직으로서 공산당 지배 아래 단일 명부 선거를 치렀다. 1990년 조국연합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상세

1941년 독소전 개전 뒤 게오르기 디미트로프·바실 콜라로프 등 모스크바의 노동자당 지도부가 1942년 7월 17일 조국전선 강령을 내놓았다. 강령은 3국 동맹 탈퇴, 세르비아 점령군 철수, 언론·결사의 자유, 정치범 사면, 반유대 법령 폐지, 군주제 폐지를 위한 대국민의회 소집을 요구했다. 국내 조직은 촐라 드라고이체바와 키릴 드라말리예프가 맡았고, 옛 정당 지도자 대부분은 공산당과의 협력을 거부했지만 정치 서클 즈베노, 농민동맹 플라드네파, 사회민주당 일부, 페트코 스토야노프·디모 카자소프 같은 무소속 인사가 합류했다.

1943년 8월 10일 드라말리예프, 니콜라 페트코프, 키몬 게오르기예프, 그리고르 체시메지예프, 디모 카자소프로 국민위원회가 꾸려졌다. 처음부터 공산당이 지도부의 다수를 차지하고 다른 참여자를 골랐다. 1944년 8월 말 국민위원회의 대국민 선언은 권력 장악을 목표로 내걸었고, 9월 9일 조국전선은 소피아에서 쿠데타로 정권을 잡았다. 즈베노의 게오르기예프가 이끈 정부는 10월 28일 모스크바에서 연합국과 휴전협정에 서명하고 독일과의 전쟁에 들어갔다.

1945년 여름 공산당의 지배가 굳어지자 니콜라 페트코프의 농민동맹 다수, 사회민주당 다수, 재무장관 페트코 스토야노프 같은 무소속 인사가 전선을 떠나 야권을 이루었다. 공산당은 두 당의 일부를 떼어 전선에 남기고 스토얀 코스투르코프의 급진당을 끌어들였다. 1945년 11월 18일 선거에서 전선이 큰 다수를 얻었고, 1946년 9월 국민투표로 인민공화국이 선포된 뒤 11월 디미트로프가 총리가 되었다.

1948~1949년 친공산 농민동맹을 뺀 참여 정당은 스스로 해산해 공산당이나 전선에 합쳐졌고, 전선은 공산당이 통제하는 대중 사회정치 조직이 되었다. 1949~1986년 모든 선거에서 유권자는 전선의 단일 명부를 받았고 공식 지지율은 99%를 넘었다. 전국평의회 의장은 디미트로프(1942~1949)에서 벌코 체르벤코프, 엔초 스타이코프 등으로 이어졌고, 1990년 조국연합으로 개칭했다. 1933~1938년 오스트리아의 조국전선, 베트남 조국전선과는 다른 조직이다.

소속 인물

관련 인물

관련 역사 사건

출처

  1. bg.wikipedia.org
  2. 위키백과 (영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