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라노 5일
Five Days of Milan
1848년 3월 18일부터 22일까지 밀라노 시민이 닷새 동안의 시가전으로 라데츠키의 오스트리아군을 도시에서 몰아낸 봉기. 제1차 이탈리아 독립전쟁의 도화선이 되었다.
상세
1월 담배·복권 불매 운동과 3월 17일 메테르니히 실각 소식 뒤, 18일 총독 관저 앞 평화 시위가 습격으로 바뀌었다. 시민들은 약 1,700개의 바리케이드를 쌓았고, 대주교와 사제들도 가담했으며, 대성당 첨탑에 삼색기가 올랐다. 카타네오·체르누스키 등의 전쟁위원회가 전투를 지휘하고 카사티를 수반으로 한 임시정부가 섰다.
라데츠키의 휴전 제안을 놓고 온건파는 사르데냐 왕의 개입을 원했고 카타네오의 민주파는 거부했다. 22일 마나라가 이끈 시민들이 토사 문을 빼앗자 오스트리아군은 그날 밤 사각 요새지대로 물러났다. 1861년 기념비에는 전사자 352명의 이름이 새겨졌다. 역사가들은 싸운 것이 도시의 애국자들이었고 주변 농촌의 농민은 거의 가담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