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드주의
Fordism
표준화된 제품을 조립 라인에서 미숙련 노동으로 대량생산해 값을 낮추고, 노동자에게 그 제품을 살 만한 임금을 주어 대량소비와 맞물리게 하는 생산·사회 체제. 헨리 포드의 자동차 공장에서 이름을 땄다. 그람시가 1934년 「아메리카니즘과 포드주의」에서 개념으로 다듬었고, 1970년대 프랑스 조절학파는 2차 세계대전 뒤 황금기를 생산성·임금·수요가 서로를 끌어올린 「포드주의 축적 체제」로 설명했다.
상세
포드 자동차는 1890~1910년 사이에 생긴 수백 개 소규모 자동차 회사 가운데 하나였다. 1908년 10월 1일 나온 모델 T는 단순하고 가벼우면서도 험한 시골길을 달릴 만큼 튼튼했고, 첫해 825달러였던 값은 해마다 내려갔다. 1918년이면 미국 자동차의 절반이 모델 T였다. 포드의 가장 독창적인 기여는 복잡한 작업을 전용 공구로 할 수 있는 단순한 작업들로 쪼갠 것이었다. 조립 라인 자체는 도축장에서 이미 쓰였지만, 포드는 이를 훨씬 효율적으로 결합했다. 그 결과 공장에 필요한 인력이 줄고 노동이 탈숙련화되어 생산비가 낮아졌다.
쪼개진 단순 작업은 고되고 지루해서 이직률이 연 400%에 이르렀다. 포드는 1914년 1월 5일 자격을 갖춘 남성 노동자의 최저 일급을 2.34달러에서 5달러로 올린다고 발표했다. 대부분의 노동자에게는 임금이 두 배 넘게 오른 것이었다. 숙련공이 몰려와 생산성이 오르고 훈련 비용이 줄었으며, 노동자가 자기가 만든 차를 살 수 있게 되었다. 다만 포드는 노동조합을 「세상에 닥친 최악의 것」이라 불렀고, 1937년 5월 26일 회사 경비대가 전미자동차노조(UAW) 조직가들을 곤봉으로 때린 「육교 전투」가 벌어졌다.
포드주의라는 말은 안토니오 그람시가 1934년 옥중수고의 「아메리카니즘과 포드주의」에서 쓰며 널리 알려졌고, 그 뒤 주로 마르크스주의 전통에서 쓰였다. 그람시에게 포드주의는 생산을 늘리려고 일상화되고 강화된 노동을 뜻했다. 1918년 레닌은 「소비에트 권력의 당면 과제」에서 테일러 시스템을 「부르주아 착취의 세련된 잔인함과 가장 위대한 과학적 성취의 결합」이라 부르면서도, 소비에트 공화국이 그 가치 있는 성과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썼다. 유럽에서도 1918년 뒤 이동식 조립 라인·표준화·대중 시장으로 생산 과정 전체를 재조직하는 포드주의가 지식인들을 끌어당겼다.
1970년대 프랑스 조절학파는 포드주의를 하나의 시대 개념으로 만들었다. 이들에 따르면 1930년 이후, 특히 2차 세계대전 뒤에는 대량생산에 대량소비가 짝지어졌다. 생산성이 오르면 임금이 오르고, 늘어난 소득이 수요와 투자를 늘리는 「성장의 선순환」이었다. 이를 받친 것은 단체교섭과 임금 결정 방식, 케인스주의 국가, 브레턴우즈 국제 체제 같은 제도들(조절 양식)이었다. 1929년 공황은 대량소비 없는 대량생산이 낳은 축적 체제의 위기로 설명된다. 1970년대에 이 체제가 흔들린 뒤의 시기를 두고는 정보기술·틈새시장·서비스업·세계화된 금융·평생직장의 해체를 특징으로 하는 「포스트포드주의」라는 말이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