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uriérisme · 1830년대–1850년대

푸리에주의

Fourierism

샤를 푸리에(1772–1837)와 그 제자들의 경제·정치·사회 사상과 그에 따른 운동이다. 인간의 정념을 억누르지 않고 조직하는 「정념 인력」을 사회의 기본 원리로 보고, 팔랑스테르라는 공동 거주·노동 단위를 이상 사회의 세포로 구상했다.

상세

푸리에는 뉴턴의 만유인력에 빗대어 사회 발전을 이끄는 근본 힘을 「정념 인력」이라 불렀고, 12가지 정념의 조합에서 나오는 810가지 성격을 모두 담으려면 이상적인 팔랑주에 1,620명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실제 시도는 대부분 그가 죽은 뒤에 이루어졌다. 프랑스에서는 1832년 푸리에와 콩시데랑의 지원으로 콩데쉬르베그르(오늘날 이블린)에 팔랑스테르가 세워졌고 19세기 후반 고댕의 파밀리스테르가 그의 생각 일부를 실천했으며, 빅토르 콩시데랑은 1850년대 텍사스에서 공동체 「라 레위니옹」을 세우려 했다. 미국에서는 앨버트 브리즈번의 보급으로 1840년대 중반에 약 30개의 푸리에주의 결사가 생겼고, 브룩팜은 1844년 새 규약으로 팔랑주 체제를 따르려 했으나 1846년 팔랑스테르 건물이 불탄 뒤 1847년 문을 닫았다. 『공산당 선언』에서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푸리에주의자들이 스승의 낡은 견해를 고집하며 개별 팔랑스테르를 세우려 하고, 프랑스에서는 신문 『개혁』을 따르던 공화파 개혁주의자들에 반대한다고 적었다.

관련 인물

출처

  1. fr.wikipedia.org
  2. 위키백과 (영문)
  3. fr.wikipedia.org
  4. 위키백과 (영문)
  5. 위키백과 (영문)
  6. /commulingo/docs/marx-engels-communist-manifes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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