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53년 분열, 1963년 부분 재통합

제4인터내셔널의 분열과 재통합

Splits and Reunification of the Fourth International

트로츠키주의 제4인터내셔널이 미셸 파블로의 노선, 특히 사회민주당·공산당에 대한 적응 전술을 둘러싸고 1953년 11월 국제서기국(ISFI)과 국제위원회(ICFI)로 갈라진 사건과 그 뒤의 부분적 재결합. 1953~1963년 양측 다수파는 폴란드·헝가리 위기에서 스탈린주의를 반대하고 알제리 독립전쟁과 1959년 쿠바혁명을 지지하며 접근했고, 1963년 6월 로마 통합대회에서 다수가 재결합해 통합서기국을 세웠으나 프랑스의 랑베르 계열과 영국의 SLL은 불참해 복수의 국제 조직이 남았다.

상세

배경

제4인터내셔널은 1938년 9월 트로츠키와 지지자들이 창건했으나,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와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유럽·아시아 지부가 파괴되고 트로츠키가 암살되면서 지도부와 각국 조직의 연계가 끊겼다.

전후 재건 과정에서 미셸 파블로는 1951년 제3차 세계대회에서 동유럽 국가들과 스탈린주의 정당이 장기간 존속할 수 있다고 보았고, 공산당·사회민주당에 대한 장기 입당 전술(entrism sui generis)을 주장했다. 프랑스 지부 다수파가 이에 반대했고, 국제 지도부는 이들을 교체했다.

1953년 분열

1953년 10월 3~4일 《더 클럽》, 국제주의공산당(PCI), 스위스 지부, 미국 SWP 대표가 파블로주의에 반대하는 분파를 결성했고, 11월 23일 국제위원회 결성 결의가 채택되면서 ICFI가 조직되었다. 랑카 사마 사마자당은 ISFI에 남으면서도 통합대회를 요구하는 중간 입장을 취했다.

재통합과 그 이후

1960년 칠레·인도·일본에서 양측 지부가 통합했고, 1962년에는 공동 세계대회 준비를 위한 대등위원회가 설치되었다. 1963년 6월 로마 제7차 세계대회에서 다수가 재결합해 통합서기국(USFI)을 세웠다. 이 대회는 망델·한센이 기초한 《오늘날 세계혁명의 동학》을 채택했다.

랑베르의 PCI와 힐리의 SLL은 불참하고 ICFI 기치를 계속 들었으며, 쿠바에서 노동계급 국가가 수립되었다는 통합 문서의 핵심 논점에 반대했다. 포사다스 계열은 1962년 이미 이탈했다. 파블로 계열은 반대 결의를 제출했으나 소수에 그쳤고 1964년 국제를 공개적으로 떠나 파블로가 축출되었다고 주장했다.

사료와 평가

1964년 스리랑카의 랑카 사마 사마자당이 연립정부 참여로 제명되고, 발라 탐포에가 이끄는 분파가 새 지부가 되었다. 1965년 국제혁명적 맑스주의 경향(파블로)이 분리되어 1992/1995년에 재합류했다. 1979년 나우엘 모레노 계열이 분리해 국제노동자동맹-제4인터내셔널을 세웠고, 1990년 미국 SWP가 공식 탈퇴했다. 2003년 통합서기국은 집행국과 국제위원회로 대체되었다. 분열과 재통합을 축으로 트로츠키주의 국제 조직들이 각자 '진정한 계승'을 주장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는 평가가 있다.

출처

  1. 위키백과 (영문) 1953 schism, 1963 partial reunification and successor currents
  2. 위키백과 (영문) causes of the split and path to reunification
  3. 위키백과 (영문)
  4. 위키백과 (영문)
← 용어 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