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사회당 (1936)
French Social Party
1936년 7월 크루아드푀(불의 십자단)가 해산된 뒤 그 지도자 프랑수아 드 라 로크 중령이 창당한 프랑스의 보수·민족주의 우파 정당. 기독교적·보수적·애국적 이념을 내세우고 사회적 상호부조 조직을 운영했으며, 1937년 80만 명, 1939년 약 120만 명의 당원을 둔 프랑스 우파 최초의 대중정당이었다. 1940년 패전 뒤 「프랑스 사회진보」로 이름을 바꾸어 명맥을 이었으나 해방 뒤 재건되지 못했다.
상세
1936년 6월 인민전선 정부는 크루아드푀를 비롯한 극우 연맹들을 해산했고, 그 지도자 라 로크는 1936년 7월 6일 프랑스 사회당을 창당했다. 7월 12일 파리 바그람 홀에서 비행사 장 메르모즈와 장 이바르네가레 등이 참석한 가운데 창립대회가 열렸다. 당의 표어 「노동, 가족, 조국」은 뒤에 비시 정권이 그대로 가져다 썼다. 정부 권한 강화와 직능 대표제 같은 강령 때문에 당은 합법주의를 표방했음에도 좌파 세력에게서 의회공화국을 위협하는 파시즘의 위험으로 여겨졌다.
당은 1936년부터 1940년까지 크게 성공해 1937년 80만 명, 1939년 약 120만 명이 가입했고, 1939년 7월에는 하원의원 8명, 도의원 185명, 군의원 322명, 시장 2,819명을 거느렸다고 주장했다. 라 로크는 1937년 6월 자크 도리오의 프랑스인민당이 주도한 반마르크스주의 「자유전선」 참여를 거부했고, 라 카굴의 비합법 활동도 비난했다. 1930년대 말에는 급진당과 가까워져 1938년 4월 12일 에두아르 달라디에 정부 신임에 찬성했다.
1940년의 패전으로 당은 대중적 세력을 선거 성과로 옮길 기회를 잃었다. 정당 활동이 정지되자 「프랑스 사회진보」로 이름을 바꾸어 사회·시민 단체망과 당원들의 인적 관계로 살아남았다. 당은 페탱 원수 개인에게 충성하고 국민혁명을 비판적으로 승인했지만, 반유대주의와 대독 협력은 거부했다고 서술된다. 라 로크는 당원의 친독 민병대, 반볼셰비키 프랑스 의용군 등의 가입을 금지했고, 일부 당원은 레지스탕스에 참여했다. 라 로크 자신은 1943년 게슈타포에 체포되어 독일로 추방되었다.
해방 뒤 라 로크는 당을 「프랑스 화해를 위한 공화사회당」으로 재건하려 했지만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고, 이 당은 공화좌파연합에 참여했다가 사라졌다. 당의 이념적 유산은 제4공화국의 인민공화운동과 프랑스 인민연합으로 이어졌다고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