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단스크 협정
Gdańsk Agreement
1980년 8월 31일 그단스크 레닌 조선소에서 폴란드 정부의 미에치스와프 야기엘스키와 공장간파업위원회(MKS) 대표 레흐 바웬사가 서명한 합의로, 1980년 파업 물결을 끝낸 네 개의 8월 합의 가운데 하나다. 파업위원회가 내건 21개 요구의 핵심이던 당의 통제를 받지 않는 노동조합을 만들 권리와 파업권을 정부가 인정했고, 검열 완화와 정치범 석방, 임금 인상, 토요 휴무도 함께 담았다. 사회주의 나라 정부가 제 노동자에게 당 밖의 조직을 문서로 허용한 첫 사례였고, 이에 따라 연대는 1980년 11월 10일 정식 등록되었다. 정부는 1981년 12월 계엄으로 이 약속을 사실상 되돌렸다.
상세
배경
1980년 여름 폴란드는 대외 채무와 물가 상승으로 경제위기에 빠졌고, 정부가 식료품 가격 인상을 발표하자 전국에서 파업과 공장 점거가 이어졌다. 8월 14일 그단스크 레닌 조선소 노동자들이 정년을 다섯 달 앞두고 해고된 안나 발렌티노비치의 복직을 요구하며 파업에 들어갔고, 바웬사가 이끄는 공장간파업위원회(MKS)가 21개 요구를 정부에 제출했다. 이 요구는 1956년 포즈난과 1970년 연안 도시의 파업이 중앙 조정 기구 없이 흩어져 무산된 교훈을 반영해, 사업장별 요구가 아니라 단일한 공동 강령으로 제시되었다.
협상과 조문
정부 대표단과 MKS 대표단의 협상은 8월 31일 조선소에서 조인으로 끝났다. 첫째 조문은 당과 기업으로부터 독립된 자유노조의 결성권이었고, 여기에는 폴란드 정부가 비준한 국제노동기구(ILO) 제87호 협약이 원용되었다. 이어 파업권과 파업 참가자에 대한 보장, 표현·출판의 자유와 독립 출판, 1970년·1976년 파업 뒤 해고된 사람들의 복권과 정치범 석방, 언론의 MKS 정보 접근, 파업 기간 임금 보상, 기본급 2,000즈워티 인상, 물가 연동 임금 인상, 식료품 공급과 잉여분만의 수출, 상업 가격과 외화 상점 폐지, 당적이 아니라 자격에 따른 관리 임용, 여성 50세·남성 55세 조기 은퇴, 육아휴직 3년, 토요 휴무가 담겼다.
결과와 파탄
연대는 1980년 11월 10일 정식 등록되었고 결성 위원회들이 9월 17일 하나의 전국 조직으로 통합되면서 가입자는 1981년 9월 1천만 명에 이르러 전국 노동연령 인구의 3분의 1을 대표했다. 그러나 1981년 12월 보이치에흐 야루젤스키 정권은 계엄을 선포하고 수년간의 탄압으로 연대를 와해시키려 했으며, 연대는 지하 조직으로 들어가 바티칸과 미국의 지원을 받았다. 운동이 살아남으면서 1989년 원탁 회의와 최초의 복수 정당 선거가 열렸고, 8월 말 연대 주도의 연합정부가 들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