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eral Agreement on Tariffs and Trade (GATT) · 1947.10.30–1994.12.31 (1947년 10월 30일 제네바에서 23개국이 서명해 1948년 1월 1일부터 잠정 적용되었고, 1995년 1월 1일 세계무역기구가 그 자리를 이었다. 협정 본문은 WTO 체제 안에서 「GATT 1994」로 고쳐진 채 지금도 유효하다.)

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 (GATT)

General Agreement on Tariffs and Trade (GATT)

관세와 수입 할당 같은 무역 장벽을 줄이려고 1947년 23개국이 맺은 다자 무역협정. 국제무역기구(ITO)를 세우려던 계획이 미국의 비준 거부로 무산되자, 그 일부였던 관세 협정이 반세기 가까이 「잠정적」 국제기구 구실을 했다. 여덟 차례의 다자 협상(라운드)으로 주요국의 평균 관세를 1947년 약 22%에서 우루과이 라운드 뒤 5%로 낮췄고, 1995년 세계무역기구로 이어졌다.

상세

2차 세계대전 뒤 미국은 통화의 IMF, 재건의 세계은행과 나란히 무역을 맡을 세 번째 기구로 국제무역기구를 세우려 했다. 50개 넘는 나라가 협상한 ITO 헌장은 무역뿐 아니라 고용, 원자재 협정, 제한적 영업 관행, 국제 투자와 서비스까지 다루는 야심 찬 것이었고, 1947~1948년 아바나의 유엔 무역고용회의에서 채택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미국이 비준하지 않아 ITO는 끝내 출범하지 못했다.

그 사이 1945년 12월 15개국이 관세를 낮추고 묶는 협상을 시작했다. 1930년대 초부터 남은 보호무역 조치를 바로잡으려는 것이었다. 이 첫 협상은 무역 규칙과 함께 세계 무역의 약 5분의 1인 100억 달러어치에 걸친 4만 5천 건의 관세 양허를 낳았고, 1947년 10월 30일 제네바에서 23개국이 서명했다. 협상 방식은 1934년 미국 호혜통상협정법의 관행을 따른 요청·제안 방식이었다. 두 나라 사이에 합의한 양허는 최혜국 대우 조항에 따라 모든 참가국에 똑같이 적용되었다. 한 나라에 준 관세 인하를 다른 모든 나라에도 주는 것이다.

GATT는 1948년 1월 1일부터 「잠정 적용」되어 1994년까지 47년 동안 세계 무역 대부분의 규칙이 되었다. 아네시(1949), 토키(1951), 제네바(1955~1956), 딜런(1960~1962) 라운드가 관세를 더 낮췄고, 1964~1967년 케네디 라운드는 반덤핑 협정을, 1973~1979년 도쿄 라운드는 관세가 아닌 무역 장벽에 대한 협정들을 만들었다. 개발도상국에는 규칙을 덜 엄격하게 적용하는 「특별 우대」 조항도 두었다. 다만 농업은 수입 할당과 수출 보조금에서 사실상 예외였다.

GATT의 결정은 실제로는 합의로 이루어졌고, 국내 정책 목표와 부딪치면 회원국이 규칙을 지키지 않을 예외가 많았으며, 분쟁 해결도 회원국이 막을 수 있었다. 회원국들은 국제기구에 너무 많은 권한을 넘기기를 꺼렸던 것이다. 이 느슨함은 브레턴우즈 체제의 「착근된 자유주의」, 곧 자유무역과 국내 고용·복지 정책을 함께 추구한 타협과 맞물렸다. 1986~1994년 우루과이 라운드는 서비스·지식재산권·농업으로 대상을 넓혔고, 그 결과 1995년 1월 1일 세계무역기구가 출범했다.

관련 역사 사건

출처

  1. 위키백과 (영문)
  2. wto.org
  3. 위키백과 (영문)
  4. 위키백과 (영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