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물 조달 위기
Grain Procurement Crisis of 1927–28
1927년 말부터 1928년까지 소련의 국가 곡물 조달량이 계획에 크게 못 미친 경제 위기다. 1927년의 전쟁 공포 속에서 고정 수매 가격이 낮게 유지되고 공업품이 부족하자 농민들이 곡물 출하를 미뤘고, 도시와 군대의 식량 공급이 위협받았다. 스탈린은 이를 쿨라크의 사보타주로 규정하고 형법 107조에 따른 강제 수매와 '우랄-시베리아 방식'으로 대응했으나, 부하린 등은 지역 흉작과 낮은 수매 가격을 원인으로 지목했다. 이 위기는 네프의 종언과 강제 집단화로의 전환을 결정지은 분수령으로 평가된다.
상세
배경
전시공산주의의 강제 징수를 대신해 1921년에 도입된 네프 아래에서 국가는 시장에서 곡물을 사들였다. 조달량은 1925/26년 840만 톤에서 기록적 풍작이었던 1926/27년 1,060만 톤으로 늘었고, 계획 당국은 1927/28년 목표를 그보다 높게 잡았다. 그런데 1927년 가을부터 조달이 급감해 10~12월 분기 계획 700만 톤에 210만 톤이 모자랐다. 1927년의 전쟁 공포, 낮게 고정된 수매 가격, 농촌까지 돌아가지 않은 공업품이 겹친 결과였다. 1927년 초 공업품 가격을 약 10% 인하한 조치도 사설 상인을 누르려던 것이었으나 국영 매장의 재고만 고갈시켰다.
대응과 논쟁
곡물이 나오지 않는 이유를 두고 당 지도부는 갈렸다. 스탈린은 가격 인상을 강요하려는 부농의 사보타주로 보았고, 부하린은 흉작과 매력 없는 수매 가격 때문이라고 보았다. 1928년 1월 15일부터 2월 6일까지 시베리아를 돌면서 스탈린은 쿨라크에게 잉여 곡물을 정부 가격으로 즉시 인도하도록 하고, 거부하면 형법 107조로 기소해 곡물을 몰수하며 몰수량의 25%를 빈농과 약한 중농에게 저가로 넘기거나 장기 대부로 주라고 지시했다. 이 강제 조달 방식은 우랄과 시베리아에서 시작되어 마을 총회가 개별 할당량을 배정하고 미달한 쿨라크에게 기준량의 최대 5배 벌금(‘5배 벌금’)을 물리는 '우랄-시베리아 방식'으로 정리되었으며, 1929년 3월 20일 정치국의 승인을 거쳐 동부 지역에 권고되었다.
결과와 집단화로의 전환
강제는 위기를 풀지 못했다. 1927/28년 수확은 전년보다 조금 줄었을 뿐인데 1927년 10월부터 1928년 10월까지 조달은 14% 줄었고, 시베리아와 우랄에서는 곡물 대신 육류와 계란 등으로 생산이 옮겨 갔다. 곡물의 자유 시장 가격은 1927년 12월에서 1928년 12월 사이 두 배로 뛰었고 사료값 상승은 가축 사육 두수를 떨어뜨렸다. 정부는 1928년 가을 대도시에, 1929년 2월에는 전국에 빵 배급제를 도입했다. 1928년 7월 중앙위원회 전원회의는 일부 지역의 징발식 조달을 규탄하는 한편 새 국영 곡물 농장 건설을 결의했다. 네프의 연장을 주장한 우파(부하린, 리코프, 톰스키)는 수매 가격을 2~3배 올리고 부족분을 수입으로 메우자고 했으나 채택되지 않았다. 강제 조달의 상대적 성과는 행정적 강제가 통한다는 확신을 낳았고, 위기는 전면 집단화와 탈쿨라크화로 향하는 전환점이 되었다.
관련 인물
관련 역사 사건
출처
- 위키백과 (영문) comprehensive English Wikipedia article on the crisis: background, emergence, goods shortage, Stalin's response, and consequences including the end of NEP and turn to collectivization
- 위키백과 (러시아어) Russian Wikipedia article 'Bread Strike': details on price dynamics, market distortions, introduction of rationing, and the crisis as impetus for mass collectivization
- 마르크스주의 인터넷 아카이브 Stalin's January 1928 statements in Siberia demanding enforcement of Article 107 against kulak grain speculators and ordering compulsory delivery of surpluses
- encyclopedia.com Encyclopedia of Russian History entry: the grain crisis as turning point in Soviet policy, showing Stalin's view of kulaks as enemy and establishing the context for harsh collectivization
- 위키백과 (영문)
- encyclopedia.com
- 위키백과 (러시아어)
- 마르크스주의 인터넷 아카이브
- 위키백과 (영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