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러시아 국수주의
Great Russian Chauvinism
대러시아 국수주의는 지배적 위치에 있는 민족이 스스로를 '우월한 민족'으로 선언하며 다른 민족들을 억압하는 극단적 민족주의 형태로, 러시아 제국의 유산이었다. 레닌은 이 개념을 소비에트 민족정책의 핵심 적으로 규정하고, 과거 피억압 민족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형식적 평등을 넘어 대러시아 국수주의에 대한 특별한 경계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1920년대 코레니자치야 정책은 이를 실천하기 위한 제도적 노력이었으나, 1930년대 중반 이후 스탈린 체제 아래 러시아 중심주의가 귀환하면서 공식 담론에서는 사라졌다.
상세
문제의 설정
대러시아 배외주의는 지배 민족이 스스로를 우월한 민족으로 규정하고 다른 민족을 억압하는 태도를 지칭한다. 러시아 제국의 유산으로서 이 문제는 다민족 국가를 건설하려는 소비에트 정권에게 실무적 과제였다. 제국 시기의 관료 기구와 언어 정책, 문화적 위계가 그대로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레닌은 이 문제를 형식적 평등의 문제로 다루지 않았다. 그는 억압 민족의 사회주의자와 피억압 민족의 사회주의자에게 요구되는 것이 다르다고 주장했다. 전자에게는 자기 민족의 특권에 대한 경계와 분리 독립권의 인정이 요구되고, 후자에게는 민족적 고립이 아닌 통합의 지향이 요구된다는 비대칭적 정식이었다.
정책적 표현
1922년 자치화 논쟁이 이 문제의 첫 시험이었다. 레닌은 스탈린의 자치화 안을 대러시아 배외주의의 표현으로 규정하고, 러시아를 포함한 모든 공화국이 동등하게 가입하는 연방 형식을 요구했다. 그는 같은 시기 그루지야 사건의 처리 방식도 같은 근거로 비판했다.
1923년 제12차 당대회는 대러시아 배외주의를 주요 위험으로 규정하고, 그 대응으로 코레니자치야 정책을 채택했다. 이 대회에서 지방 민족주의도 위험으로 지목되었으나, 두 위험 사이의 비중이 어떻게 설정되는지가 이후 정책 방향을 결정하는 문제가 되었다.
반전과 이후
1930년대 중반 이 비중이 역전되었다. 지방 민족주의가 주요 위험으로 재규정되고 민족 간부층이 제거되면서, 대러시아 배외주의라는 용어가 공식 담론에서 사라졌다. 러시아 역사의 인물과 사건이 소련 애국주의의 자원으로 재편되었고, 전쟁 시기에는 러시아 민족의 지도적 역할이 공식 서사에 포함되었다.
이 개념의 소멸은 소련 민족 정책의 성격 변화를 보여주는 지표로 다루어진다. 초기 정책이 지배 민족의 특권을 억제하는 데 초점을 두었다면, 이후에는 러시아어와 러시아 문화를 연방 통합의 매개로 삼는 방향으로 이동했다. 이 전환이 남긴 긴장은 소련 해체기 민족 갈등의 배경 가운데 하나로 논의된다.
관련 용어
관련 인물
관련 역사 사건
출처
- 위키백과 (영문) core definition, Lenin's usage in 1922 letters on the USSR formation and the Georgian Affair, Bukharin's 'unequal position' argument at the 12th Congress
- 위키백과 (러시아어) broader definition, Soviet-era usage, transformation from anti-chauvinism to борьба с безродным космополитизмом after the Great Patriotic Wa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