Великий Сибирский Ледяной поход · 1919.11.14–1920.03

대시베리아 빙상 행군

Great Siberian Ice March

1919년 11월 옴스크 함락 뒤부터 1920년 3월 초까지 알렉산드르 콜차크 정부의 백군 동부전선 잔존 부대가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따라 치타까지 2천 킬로미터 넘게 걸어서 물러난 겨울 후퇴. 철도를 체코슬로바키아 군단이 장악한 탓에 군대는 혹한 속에 옛 역로와 얼어붙은 강을 따라 걸어야 했고, 지휘관 블라디미르 카펠은 1920년 1월 26일 동상과 폐렴으로 죽었다. 세르게이 보이체홉스키가 지휘를 이어받아 2월 얼어붙은 바이칼호를 건넜고, 2만 명 남짓이 3월 초 그리고리 세묘노프가 지배하던 치타에 이르렀다.

상세

1919년 가을 토볼강 전선이 무너지고 11월 14일 옴스크가 함락되자 콜차크군은 옴스크·노보니콜라옙스크 작전에서 거듭 패하며 동쪽으로 흩어졌다. 12월 중순 동부전선 사령관이 된 카펠은 망설이는 자는 떠나도 좋다는 명령을 내리고 남은 병력으로 셰글롭스크 타이가를 나흘 만에 건넜는데, 이 과정에서 중화기와 부상병을 거의 다 버렸다. 크라스노야르스크에서는 수비대장 브로니슬라프 지네비치가 볼셰비키가 이끈 노동자 봉기에 가담해 길을 막았고, 뒤에서는 겐리흐 에이헤의 붉은 군대 제5군이 쫓아왔으며 표트르 셰틴킨 등의 파르티잔이 측면을 쳤다. 카펠은 1월 초 얼어붙은 칸강을 따라 행군하다 얼음 구멍에 빠져 동상을 입었고 다리를 잘라 낸 뒤 폐렴에 걸려, 1월 26일 우타이 간이역에서 죽었다. 부하들은 그의 시신을 끝까지 운구했다.

콜차크는 체코슬로바키아 군단의 보호를 받으며 열차로 앞서 갔으나 1920년 1월 이르쿠츠크에서 군단에 의해 사회혁명당·멘셰비키의 정치중앙에 넘겨졌다. 보이체홉스키가 이끈 부대는 이르쿠츠크를 공격해 그를 구하려 했지만 콜차크는 2월 7일 총살되었고, 공격을 포기한 부대는 이르쿠츠크를 우회해 2월 11일부터 며칠에 걸쳐 얼어붙은 바이칼호를 건넜다. 호수를 건넌 사람은 3만~3만 5천 명이었고, 그 가운데 2만~2만 5천 명의 병력이 3월 초 세묘노프의 치타에 들어갔다. 보이체홉스키는 참가자 전원에게 「대시베리아 원정 기장」을 주었고, 살아남은 부대는 극동에서 싸움을 이어 갔다. 이르쿠츠크 너머로 진격하지 말라는 당 중앙위원회의 명령에 따라 붉은 군대는 그곳에서 멈추고, 일본군이 지키는 자바이칼과 맞서는 대신 폴란드 전선에 힘을 돌렸다.

관련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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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1. 위키백과 (영문)
  2. 위키백과 (러시아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