铁饭碗 · 1949년–현재

철밥통

Iron Rice Bowl

중화인민공화국에서 국유기업과 정부 기관이 노동자에게 종신 고용과 주거·의료·교육·연금 등 비임금 복지를 함께 보장하던 고용-복지 체제를 가리키는 중국 속어. '밥그릇'(饭碗)이 직장을 뜻하는 관용에서 나왔고, 철로 만든 밥그릇은 깨지지 않는다는 뜻으로 평생 직업 안정성을 나타낸다. 성과와 무관한 균등 임금과 만성적 과잉 인력이 특징이었고, 1980년대 계약제 노동 도입과 1990년대 말 샤강(下崗) 대량 해고로 국유기업 부문에서는 해체되었으나 공무원 등 일부 공공 부문에서는 여전히 남아 있다.

상세

어원

철밥그릇은 청대 지윤(紀昀)의 필기 소설 《열미초당필기(閱微草堂筆記)》에 나오는 이야기에서 유래했다. 미모의 계집종이 그릇을 자주 깨뜨려도 벌을 받지 않자, 주인이 그릇을 모두 쇠로 바꾸어 깨뜨릴 수 없게 만들었다는 이야기다. 이후 이 말은 꾸준한 소득과 복지가 보장되는 안정된 직업을 뜻하게 되었다. 이 이야기가 실린 판본의 연도는 자료마다 1798년과 1800년으로 엇갈려 단정할 수 없다.

형성과 초기 조건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무렵 도시 노동력의 거의 절반이 실업 상태였고 1948~1949년의 초인플레이션으로 도시 생활이 유지되기 어려웠다. 일자리 보장은 공산당이 내건 주요 약속이었고, 1949년 이후 사영 기업이 국유기업으로 대체되면서 국가가 주요 고용주가 되어 임금과 복지를 지급했다. 국유기업과 사업단위는 종신 고용을 보장했고 임금은 업적과 무관하게 균등했으며, '일을 하든 하지 않든 매달 36위안'이라는 말이 이를 압축한다. 그 결과 대부분 부문에서 인력 과잉과 낮은 효율, 높은 고용 비용이 나타났다.

축소와 해체

1958~1962년 대약진 시기에는 고용이 늘었으나 그 실패 후 많은 사업이 중단되면서 노동력의 약 20퍼센트를 줄여야 했다. 등샤오핑의 노동 개혁이 시작되면서 종신 고용과 국가 복지가 축소되었고, 1980년 국유기업의 신규 채용을 계약제로 전환하려는 시도와 함께 자녀가 부모의 직위를 자동 승계하는 관행이 폐지되었다. 1986년 10월 1일부터 신규 국유 산업 노동자는 기간제 계약으로 채용되었다.

1992년 헌법 개정으로 계획경제가 사회주의 시장경제로 대체되고 사영·개인·외국인 투자 기업이 허용되었다. 1995~1996년 무렵 국유기업의 약 절반이 적자를 보고했고 1997년 아시아 금융 위기가 이를 악화시켰다. 1997년 9월 제15차 당대회에서 장쩌민은 대중형 국유기업 개혁 가속화와 대량 해고를 발표했고, 중소 국유기업은 합병·임대·매각·파산으로 정리되었다. 2001년 세계무역기구 가입 조건으로 '철밥그릇 깨기'가 요구되기도 했다.

샤강과 그 규모

샤강(下崗)은 해고와 구별되는 중국 특유의 실업 형태다. 노동자는 법적으로는 고용 상태로 남지만 일자리가 없고 제대로 된 임금을 받지 못하며, 작업반(單位)에서 최소한의 급여만 받는다. 정부 지원을 받을 자격이 있는 실업(失业)과 달리 샤강 노동자는 국가가 3분의 1, 이전 사용자가 3분의 2를 부담하는 최소 급여를 받았다. 이 구분은 복지 체제의 부담을 줄이고 실제 실업 수치를 감추었으며 노동계급을 분절해 통일된 행동을 막았다.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까지 해고 규모는 2,700만에서 3,500만 명으로 자료마다 다르게 제시된다. 1998년까지 국유기업 노동자의 67.84퍼센트가 정리 해고되었고, 1999년까지 도시 노동력의 13.2퍼센트가 해고되었다. 중국석유천연가스집단공사와 시노펙은 각각 약 70만 명을 해고했고, 다칭 유전은 노동자들의 강한 반발 때문에 해고를 배제했다. 여성과 건강이 나쁜 노동자가 정리 해고 위험에 더 많이 노출된 반면 남성, 고학력자, 당원, 고숙련 직종 종사자는 해고될 가능성이 낮았다.

현재와 지역 비교

공무원은 여전히 종신 고용의 철밥그릇을 누리며, 이는 비효율과 부패의 원인으로 자주 지목된다. 2015년 말 기준 공무원은 716만 7천 명이었다. 2011년 광둥성은 계약 채용과 성과급 도입으로 철밥그릇을 깨려는 시도를 이어갔다. 2014년 《사업단위인사관리조례》가 7월 1일 시행되면서 사업단위 직원과의 관계가 계약 관계로 재정의되어 해당 부문의 종신 신분이 종료되었다.

이 체제는 지역적으로도 고르지 않았다. 대만은 국유기업이 적고 외국인 기업이 많으며 국가 복지 체제의 기반이 없어 이 체제가 널리 퍼지지 않았고, 노동자들이 직업 안정과 복지를 잃으며 겪은 불안을 대체로 피할 수 있었다. 홍콩은 외국인 투자의 중심지로 국유기업이 적고 시장 압력에 더 노출되어 철밥그릇의 존재가 제한적이었다.

쟁점과 구분

샤강이 단순한 임금 인상 지연이 아니라 해고와 구별되는 제도였다는 점, 그리고 철밥그릇이 서열 승진제와 동일하지 않다는 점이 학술적 논점이다. 일부 연구자는 종신 고용과 연공 승진 자체가 근본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 국유기업이 이윤을 모두 국가에 상납하고 임금이 전국적 임금 체계에 따라 기업 재정과 거의 무관하게 지급되었기 때문에 노동자가 자기 기업에 강한 경제적 귀속감을 형성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류·페리(2015)는 노동 유인의 핵심 문제가 종신 고용 관행이 아니라 국가 지향적 정신에 있었다고 본다.

1990년대 국유기업 개혁을 자연 실험으로 삼은 연구는 1995~2002년 국유기업 가계 자산 축적의 약 40퍼센트가 예비적 저축에서 비롯되었다고 추정하고, 실업 위험에 더 취약한 인구 집단이 예비적 자산을 더 많이 축적했음을 보여 주었다. 이는 철밥그릇의 해체가 노동자의 소비와 저축 행태에 미친 영향을 보여 주는 사례다. 서구에서는 비슷한 용법이 정부 지원을 받는 과학자와 연구소를 가리키는 데 쓰였고, 한국에서는 철밥통이 직업 안정뿐 아니라 안정적 소득까지 뜻하는 말로 확장되었다.

관련 인물

출처

  1. 위키백과 (영문) term origin (Ji Yun, 阅微草堂笔记), history from 1949 through post-1978 reforms, xiagang connection, and current situation of government officials retaining iron rice bowl
  2. pmc.ncbi.nlm.nih.gov academic study (Wang & Xie, 2015) of iron rice bowl as guaranteed lifetime job security plus medical, housing, education, pension benefits; state-sector happiness premium after SOE reform
  3. frbsf.org Federal Reserve Bank of San Francisco working paper (He, Huang, Liu & Zhu, 2017) on precautionary savings triggered by the breaking of the iron rice bowl in the 1990s SOE reform
  4. chinausfocus.com analysis of the iron rice bowl as cradle-to-grave welfare and its unraveling after 1986 contract-labor reforms
  5. 위키백과 (영문)
  6. pmc.ncbi.nlm.nih.gov
  7. zh.wikipedia.org
  8. 위키백과 (영문)
  9. frbsf.org
  10. 위키백과 (한국어)
  11. chinausfocus.com
← 용어 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