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폭풍 (1967)
January Storm (1967)
1967년 1월 상하이의 반란파가 장춘차오·야오원위안과 왕훙원의 노총사를 앞세워 시 당위원회와 시정부를 무너뜨리고 권력을 빼앗은 사건. 「1월 혁명」이라고도 한다. 마오쩌둥이 이를 지지하면서 전국 「탈권」의 모델이 되었고, 2월 5일 파리 코뮌을 본뜬 상하이 인민공사가 섰다가 18일 만에 혁명위원회로 바뀌었다.
상세
1966년 11월 왕훙원의 「상하이 노동자 혁명 조반 총사령부」가 안팅역에서 열차를 세우고 버티자 장춘차오가 그 요구를 받아들였고, 시 당국이 꾸린 「적위대」와 12월 30일 캉핑로에서 충돌했다. 1967년 1월 4~5일 반란파는 《문회보》와 《해방일보》를 접수했고, 6일 100만 명이 지켜본 대회에서 시장 차오디추와 제1서기 천피셴을 끌어내렸다. 마오는 8일 “한 계급이 다른 계급을 뒤엎는 대혁명”이라 했고, 11일 중앙위원회·국무원·중앙군사위원회·중앙문혁소조가 함께 축전을 보냈다.
반란파 32개 조직은 2월 5일 상하이 인민공사를 선포했지만, 마오는 지도부를 선거로 뽑는 코뮌이 당의 지도와 맞지 않는다며 물러섰다. 2월 23일 코뮌은 장춘차오를 주임으로 하는 상하이시 혁명위원회가 되었다. 「1월 폭풍」은 각지의 탈권과 군인·간부·대중 대표의 「삼결합」 혁명위원회를 낳았지만, 누가 진짜 반란파인지를 둘러싼 다툼은 1967년의 무장 투쟁으로 번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