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omen kuningaskunta · 1918

핀란드 왕국 (1918)

Kingdom of Finland (1918)

핀란드 내전 뒤 승리한 백색 진영이 독일 왕족을 국왕으로 세워 핀란드를 군주국으로 만들려다 실패한 시도. 1918년 10월 9일 사회민주당이 거의 빠진 의회가 헤센의 프리드리히 카를 공을 국왕으로 뽑았으나, 그는 핀란드에 오지도 즉위하지도 않은 채 독일 패전 뒤 12월 14일 왕위를 포기했다. 1919년 공화국 헌법으로 핀란드는 공화국이 되었다.

상세

1917년 12월 독립 때 군주제에 기운 의원은 소수였고, 의회는 공화국을 선언했다. 그러나 내전 뒤 승리한 백색은 사회민주당을 의회에서 배제했고(영어 출처에 따르면 마티 파시부오리 1명만 남았다. 전쟁 전 사회민주당은 200석 가운데 92석이었다), 군주파는 내전이 제약 없는 민선 의회의 불안정을 보여 주었다며 파벌 위에 선 국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근거는 스웨덴 시대인 1772년의 정부 형태법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법리였다. 리투아니아가 7월 우라흐 공작을 민다우가스 2세로 뽑았고 발트 독일인 귀족들도 독일 보호령을 청하던 때였다. 독일은 예거 부대를 훈련시키며 독립 준비를 지원한 유일한 열강이었고 내전에도 개입했으며, 핀란드의 처지는 이미 보호령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친독일 총리 유호 쿠스티 파시키비의 정부가 10월 빌헬름 2세의 처남인 프리드리히 카를 공에게 왕관을 제안했고, 페르 에빈드 스빈후부드가 섭정이 되었다. 새 군주제 헌법은 필요한 가중 다수를 얻지 못해 미뤄졌고, 한 의원은 「핀란드와 카렐리야의 왕 카를레 1세」라는 칭호를 제안하기도 했다.

11월 9일 빌헬름 2세가 퇴위하고 이틀 뒤 휴전이 이루어지자, 서방의 경고를 받은 라우리 잉만 총리의 정부는 자신도 군주파였지만 프리드리히 카를에게 왕위 포기를 청했다. 승전국들은 독일과의 동맹을 버려야 핀란드 독립을 승인하겠다고 알렸다. 프리드리히 카를은 12월 14일 왕위를 포기했고 발트해 사단도 핀란드를 떠났다. 스빈후부드가 물러나고 카를 구스타프 에밀 만네르헤임이 섭정이 되었다. 1918년 군주정 구상에 반대해 공화제를 지지했던 카를로 유호 스톨베리의 헌법안이 1919년 정부 형태법이 되었고, 1919년 3월 선거에서 공화파 정당들이 의석의 4분의 3을 얻었다. 7월 의회는 스톨베리를 초대 대통령으로 뽑았고, 그는 만네르헤임의 뒤를 이었다.

관련 인물

관련 역사 사건

출처

  1. 위키백과 (영문)
  2. 위키백과 (영문)
  3. 위키백과 (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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