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민주당 (朝鮮民主黨) · 1945–현재

조선민주당

Korean Democratic Party (North Korea)

1945년 11월 3일 조만식이 평양에서 창당한 정당. 기독교계 상공인과 지식인의 지지를 받았으나 조만식이 신탁통치에 반대하다 1946년 1월 소련 당국에 체포된 뒤 최용건이 이끌며 공산당에 종속된 위성 정당이 되었다. 1980년대 초 조선사회민주당으로 이름을 바꾸어 지금도 조선로동당의 우당으로 남아 있다.

상세

한국어 출처에 따르면 소련 군정은 1945년 10월 14일 조만식에게 그를 당수, 김일성을 부당수로 하는 정당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조만식은 분단 상태에서 정당을 만들면 분할이 굳어진다며 처음에는 반대했으나, 김일성의 거듭된 압력 끝에 11월 3일 평양에서 조선민주당을 창당했다. 당원 규모는 출처마다 다르다. 영어 출처는 몇 주 만에 약 50만 명이 되었으나 소련 보고서는 1946년 5월 14만 1천 명으로 적었다고 하고, 한국어 출처는 김일성의 계산으로 30만, 당 집계로 50만에 이르렀다고 적는다. 조만식은 비밀리에 공산주의에 동조하던 최용건을 부당수로 앉히라는 압력을 받았다.

1945년 12월 모스크바 3상회의가 신탁통치를 결정하자 1946년 1월 2일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는 반대를 의결했고, 1월 5일 조만식은 5도 인민위원회 위원장에서 물러났다가 곧 소련 당국에 체포되었다. 당 지도부의 상당수는 서울로 옮겨 새 본부를 세웠고, 1948년 5월 제헌 국회의원 선거에서 1석(이윤영)을 얻었다. 북쪽에서는 1946년 2월 24일 제1차 대회가 최용건을 당수로 뽑고 조만식을 「민족 반역자」로 규정했으며, 그 지지자들이 숙청되었다.

당은 7월 22일 북조선민주주의민족통일전선에 들어가 공산당에 사실상 종속되었다. 1947년 4월 13~15일 제2차 대회는 「인민민주주의 혁명」론을 강령에 넣고 북조선로동당과 비슷한 조직 구조를 채택했다. 그래도 한동안 당원은 늘어 소련 문서는 1946년 12월 29만 1,459명, 1947년 5월 제2차 대회 결의는 27만 3,665명으로 적는다. 1948년 8월 선거에서 35석을 받았으나, 한국전쟁 중 많은 당원이 남쪽으로 넘어가 전쟁이 끝날 무렵 당원은 1만 명 아래로 줄었다.

영어 출처에 따르면 1956년 2월 최용건이 조선로동당 부위원장이 되자 홍기황이 당수를 이었고, 홍기황은 1958년 비로동당 정당 숙청 때 간첩 혐의로 제거되었다. 한국어 출처는 최용건이 1958년까지 당수였고 강양욱이 그 뒤를 이었다고 적어 서로 다르다. 1958년 이후 지방 조직이 해체되어 1960년대에는 상부 조직만 남았다. 이름은 조선사회민주당으로 바뀌었는데, 영어 출처의 연혁은 1980년, 한국어 출처와 영어 출처의 이념 항목은 1981년(1월 28~29일 제6차 당대회)으로 적는다. 이후 당은 북한에 복수 정당제가 있다는 대외 선전에 쓰였고, 2026년 북한 매체는 리선권을 위원장으로 밝혔다.

소속 인물

관련 인물

관련 역사 사건

출처

  1. 위키백과 (영문)
  2. 위키백과 (한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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