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용대
Korean Volunteer Corps
1938년 10월 10일 중국 한커우에서 김원봉을 총대장으로 조선민족혁명당 등 조선민족전선연맹이 결성한 조선인 무장 부대. 제2차 국공합작 아래 국민정부 군사위원회의 지휘를 받으며 주로 일본군을 상대로 한 선전 공작을 맡았다. 1941년 다수 대원이 화베이의 팔로군 근거지로 옮겨 화북지대를 이루었고, 1942년 화북지대는 조선의용군으로, 충칭의 본대는 한국광복군 제1지대로 편입되었다.
상세
1937년 우한에서 조선민족혁명당, 조선청년전위동맹, 조선민족해방동맹, 조선무정부주의자연맹이 조선민족전선연맹을 만들고 그 무장 조직으로 의용대를 세웠다. 일본인 반전 운동가 아오야마 가즈오가 조직안을 작성했고, 군사위원회 정치부 부부장 저우언라이 등과 장제스의 동의를 얻었다. 창설 때 민족혁명당 계열 42명의 제1지대와 전위동맹 중심 74명의 제2지대로 나뉘었고, 대원들은 국민정부에서 식비와 공작비를 받았다. 한·중·일 3개 국어를 하는 대원이 많아 전단 살포와 확성기 방송 같은 선무 공작을 주로 맡았고, 포로 심문도 했다.
후방 선전에 머무는 데 대한 불만 속에서 1939년 부대장 김학무는 북상을 주장했고, 1941년 3월 뤄양에서 타이항산으로 옮긴 대원들은 7월 최창익 등의 화북조선청년연합회와 함께 조선의용대 화북지대가 되었다. 12월 12일 후자좡 전투에서 대원 29명이 일본군 500여 명과 싸웠다. 1942년 7월 화북지대는 김두봉을 주석으로 한 조선독립동맹의 조선의용군으로 개편되었고, 화베이 통제권을 잃은 김원봉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참여해 본대를 광복군에 편입시켰다. 조선의용군 출신은 해방 뒤 북조선에서 연안파를 이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