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당 (그리스)
Liberal Party (Greece)
1910년 엘레프테리오스 베니젤로스가 창당한 그리스의 자유주의 정당. 1910년부터 1933년까지 치른 선거 대부분에서 이겨 20세기 전반 그리스 정치를 주도했고, 국민분열 이후 공화주의 정당이 되어 1920년대 공화국을 이끌었다. 제2차 세계대전 뒤 세력이 약해졌고, 1961년 중도연합 창당을 주도하면서 51년 만에 활동을 멈추었다.
상세
그리스어 출처에 따르면 베니젤로스는 1910년 8월 22일 의원에 당선된 뒤 자유당을 세웠고, 같은 해 10월 정부를 구성해 11월 28일 헌법개정의회 선거를 치렀다. 구 정당들이 모두 불참한 이 선거에서 자유당이 압도했고, 의회는 1911년 새 헌법을 의결했다. 1912년 3월 모든 정당이 참여한 선거에서도 자유당이 이겼다. 영어 출처는 당의 뿌리를 크레타의 「맨발당」에서 찾고, 크레타가 그리스에 병합된 뒤 베니젤로스가 아테네로 옮겨 1910년 이를 전국 정당으로 만들었다고 적는다. 당은 닻을 선거 상징으로 썼다.
1915년 2월 제1차 세계대전 참전 문제로 베니젤로스와 국왕 콘스탄티노스가 대립하자 베니젤로스는 사임했지만, 5월 선거에서 자유당이 58.2%로 다시 이겼다. 1920년 11월 1일 선거에서는 득표에서 앞서고도 복잡한 선거제도 탓에 의석에서 졌고, 낙선한 베니젤로스는 프랑스로 떠났다. 1924년 베니젤로스가 다시 물러나자 당은 게오르기오스 카판다리스, 테미스토클리스 소풀리스, 안드레아스 미할라코풀로스가 이끄는 세 갈래로 갈라졌다. 베니젤로스는 1928년 8월 19일 선거에서 46.9%, 250석 가운데 178석으로 이겼으나 1932년 9월 선거에서 과반을 잃고 1933년 3월 5일 선거에서 패했다. 1933년과 1935년 친베니젤로스 쿠데타 시도가 실패한 뒤 베니젤로스파 탄압법이 나왔고, 베니젤로스와 니콜라오스 플라스티라스는 궐석 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영어 출처는 당의 노선을 근대화·자유주의·사회개혁·민족주의를 아우르는 「베니젤로스주의」로 설명한다. 당 안에는 사회민주주의 분파도 있었지만 1920년대에 점점 반공적으로 기울었고, 국민분열 이후 확고한 공화주의 정당이 되어 1920년대 공화국을 세우고 그 대부분의 기간을 이끌었다. 중산층과 발칸 전쟁·제1차 세계대전으로 얻은 「신영토」 주민이 주요 기반이었고, 주된 경쟁자는 인민당이었다.
1935년 베니젤로스가 망명하자 소풀리스가 당수가 되었다. 영어 출처에 따르면 제2차 세계대전 중 카이로의 망명정부는 거의 자유당 인사들로 꾸려졌다. 전후 당은 1946년 2월 분열했다가 1947년 다시 합쳤고, 소포클리스 베니젤로스가 1948년 11월 당수가 되어 1950년 8월부터 1951년 10월까지 세 차례 정부를 이끌었다. 1952년 선거에서 알렉산드로스 파파고스의 그리스 연합에 패하자 게오르기오스 파판드레우가 당을 맡았으나 당은 다시 갈라졌고, 1958년 선거에서는 20.67%, 36석으로 3위에 그쳤다. 같은 해 11월 당수 선거에서 소포클리스 베니젤로스가 재선되자 파판드레우와 콘스탄티노스 미초타키스 등 주요 인사들이 탈당했다. 1961년 당은 중도연합 창당을 주도하고 활동을 멈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