룸펜프롤레타리아트
Lumpenproletariat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1840년대에 만든 말로, 계급의식 없이 사회 밑바닥을 떠도는 계층을 가리킨다. 부랑자, 범죄자, 매춘부처럼 일정한 생업 없이 사는 사람들이 여기 들고, 두 사람은 이들이 반동 세력에게 쉽게 매수되어 노동자에게 맞서는 도구가 된다고 보았다. 마르크스는 『브뤼메르 18일』에서 루이 보나파르트를 「룸펜프롤레타리아트의 우두머리」라 불렀다.
상세
독일어 「룸펜」(넝마)과, 마르크스주의에서 임금노동자 계급을 가리키는 프랑스어 「프롤레타리아트」를 합친 말이다. 할 드레이퍼는 어원이 넝마가 아니라 「룸프」(건달)라고 보았다.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이 말을 처음 함께 쓴 것은 1845~1846년의 『독일 이데올로기』로, 막스 슈티르너가 몰락한 부르주아와 몰락한 프롤레타리아, 곧 어느 시대에나 있던 「룸펜」 무리를 프롤레타리아트와 뒤섞는다고 비판하는 대목이었다. 『공산당 선언』은 이들을 낡은 사회 최하층의 수동적 부패물이라 부르며, 이들이 처지로 보아 반동적 책동에 매수되기 쉽다고 썼다.
마르크스가 이 계층을 가장 자세히 그린 것은 1848~1852년 프랑스를 다룬 『프랑스의 계급투쟁』과 『브뤼메르 18일』이다. 그는 1848년 임시정부가 파리의 룸펜프롤레타리아트에서 젊은이들을 뽑아 기동대를 만들고 이들을 6월 봉기의 노동자에게 맞세웠다고 분석했다. 엥겔스도 6월 봉기를 두고 조직된 룸펜프롤레타리아트가 일하는 프롤레타리아트와 싸웠다고 썼다. 마르크스는 남의 부를 챙겨서 부자가 되는 7월 왕정의 금융귀족을 부르주아 사회 꼭대기에서 다시 태어난 룸펜프롤레타리아트로 보기도 했다.
『브뤼메르 18일』에서 마르크스는 12월 10일회의 회원으로 부랑자, 제대 군인, 출소한 죄수, 사기꾼, 소매치기, 노름꾼, 포주, 넝마주이, 거지 같은 사람들을 늘어놓은 뒤 이렇게 썼다. 「이 보나파르트는 스스로 룸펜프롤레타리아트의 우두머리가 되었다. 그는 자기가 개인적으로 좇는 이익을 여기서만 대량으로 다시 발견했고, 모든 계급의 이 쓰레기, 찌꺼기, 부스러기 속에서 자기가 무조건 기댈 수 있는 유일한 계급을 알아보았다.」 보나파르트가 선물과 대부로 대중을 꾀는 모습에는 「거저 받기와 꾸어 받기, 룸펜프롤레타리아트의 재정학은 거기서 끝난다」고 비꼬았다.
『자본』(1867)에서는 강조점이 조금 달라진다. 마르크스는 부랑자, 범죄자, 매춘부를 자본주의가 만들어 내는 상대적 과잉인구, 곧 산업예비군의 가장 깊은 밑바닥으로 다루었다. 비난보다는 자본 축적이 낳는 결과로 본 것이다.
뒷날의 쓰임새는 갈렸다. 20세기 초 독일 사회민주당은 당과 노동조합 밖의 노동자와 「존중받지 못할 빈민」을 이 말로 밀어냈다. 레닌은 이 계층을 끌어들이려는 사회주의자들의 시도를 기회주의라 불렀고, 트로츠키는 금융자본이 절망으로 몰아넣은 룸펜프롤레타리아트가 파시즘의 도구가 된다고 보았다. 소련은 자국의 비슷한 계층을 「계급에서 떨어져 나온 분자」라 불렀다. 마오쩌둥은 이들이 혁명과 반혁명 사이를 오가는 이중성을 지녔지만 바른 지도를 받으면 혁명적이 될 수 있다고 보았고, 중화인민공화국은 1953년까지 이들 약 50만 명을 920곳의 재교육 시설에 수용했다. 1960년대 이후 파농과 마르쿠제, 미국의 흑표당은 이 계층의 혁명적 가능성에 기대를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