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59년 7~8월

루산 회의 (1959)

Lushan Conference of 1959

1959년 7~8월 장시성 루산에서 열린 정치국 확대회의와 8기 8중전회. 대약진의 과오를 조정하려는 분위기에서 펑더화이가 마오에게 보낸 사신(私信)이 「소자산계급의 광열성」을 지적하자 마오는 이를 공개해 「우경 기회주의」로 규정했고, 펑더화이·황커청·장원톈·저우샤오저우가 「반당집단」으로 실각했다. 회의 뒤 전국의 「반우경」 운동이 조정 정책을 뒤집어 대기근을 악화시켰다.

상세

회의는 「신선회」로 불릴 만큼 느슨하게 시작되었다. 마오 자신이 1958년의 과열을 인정하며 지표 조정을 논의했고, 펑더화이는 고향 후난에서 본 기근과 소형 용광로의 낭비를 7월 14일 편지에 적어 마오에게 보냈다. 편지는 대약진의 성과를 인정하면서도 「성적은 크고 문제도 적지 않다」며 정치가 경제를 대신한 데서 원인을 찾았다.

마오는 7월 23일 연설에서 편지를 우경 공격으로 규정하고, 자신이 물러나면 「농촌에 가서 농민을 이끌고 정부를 뒤엎겠다」며 군의 충성을 시험했다. 지도부 대부분은 마오 편에 섰고 8중전회는 펑더화이 등을 비판하는 결의를 채택했다. 린뱌오가 국방부장으로 펑을 대신했다.

회의의 결과는 두 가지였다. 당내에서 대약진을 비판하는 것이 불가능해져 1960년까지 급진 정책이 계속되었고, 마오와 원로 간의 신뢰가 무너져 이후 문화대혁명의 씨앗이 되었다. 1965년 우한의 『해서파관』 비판이 펑더화이 사건의 은유로 읽힌 것은 이 때문이다.

관련 인물

관련 역사 사건

출처

  1. 위키백과 (영문)
  2. 위키백과 (영문)
← 용어 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