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즈라이온파
Mezhraiontsy
1913년 페테르부르크에서 결성된 러시아사회민주노동당의 통합파 조직. 정식 명칭은 '통합사회민주주의자 지구간위원회'로, 볼셰비키와 멘셰비키의 재통합을 내걸고 어느 분파에도 속하지 않는 노동자 조직을 지향했다. 전쟁에는 국제주의 입장을 취했다. 1917년 5월 귀국한 트로츠키가 합류하면서 무게가 커졌고, 그해 7월 제6차 당대회에서 약 4천 명의 조직원이 통째로 볼셰비키에 합류해 트로츠키, 이오페, 우리츠키, 루나차르스키 등을 당 지도부에 공급했다.
상세
분파 없는 당은 가능한가
1912년 프라하 회의로 볼셰비키가 사실상 독자 정당이 되자, 분열을 당의 자멸로 여기는 활동가들이 남았다. 1913년 11월 페테르부르크에서 결성된 지구간위원회, 통칭 메즈라이온파는 이런 통합파의 조직이었다. 이름은 특정 지구(라이온) 조직이 아니라 지구들 사이를 잇는 위원회라는 뜻이다. 이들은 볼셰비키의 비합법 조직론과 혁명적 강령을 대체로 공유하면서도, 분파 청산과 단일 노동자 정당의 재건을 요구했다. 규모는 크지 않았지만 수도의 금속 노동자들 사이에 기반이 있었고, 전쟁이 터지자 방위주의를 거부하는 국제주의 입장을 지켰다.
트로츠키는 왜 여기로 갔나
1917년 2월 혁명 뒤 망명자들이 돌아왔을 때, 오래 비분파 노선을 걸어온 트로츠키에게 메즈라이온파는 자연스러운 자리였다. 5월에 귀국한 그는 이 조직에 합류해 사실상의 대변인이 되었다. 그 사이 레닌의 4월 테제가 나오면서 볼셰비키와 메즈라이온파의 정치적 거리는 거의 사라진 상태였다. 소비에트로의 권력 이전, 전쟁 반대, 임시정부 불신임이라는 노선이 일치했기 때문이다. 남은 것은 조직 통합의 형식이었다. 7월 사태로 탄압이 덮친 와중에 열린 제6차 당대회에서 메즈라이온파 약 4천 명은 볼셰비키에 합류했고, 트로츠키는 감옥에 있는 채로 중앙위원에 선출되었다.
무엇을 남겼나
메즈라이온파의 존속 기간은 4년이 되지 않지만, 이 합류는 10월 혁명의 지도부 구성을 바꿨다. 트로츠키 외에도 이오페, 우리츠키, 루나차르스키, 볼로다르스키 등이 이 경로로 들어와 혁명과 초기 소비에트 정권의 요직을 맡았다. 후일 당내 투쟁기에 스탈린 쪽은 트로츠키가 1917년에야 입당한 신참이라는 사실을 그의 볼셰비즘이 빌려 온 것이라는 논거로 썼고, 트로츠키 쪽은 메즈라이온파의 국제주의가 4월 이후의 볼셰비즘과 같은 것이었다고 답했다. 조직 자체는 통합으로 소멸했으므로, 이 분파의 역사는 주로 그 구성원들의 이후 궤적으로 기억된다.
관련 용어
관련 인물
출처
- Ian D. Thatcher, Trotsky (Routledge, 2003)
- Alexander Rabinowitch, The Bolsheviks Come to Power: The Revolution of 1917 in Petrograd (W. W. Norton, 1976)
- 마르크스주의 인터넷 아카이브 Marxists Internet Archive glossary: Mezhraionts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