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파시스트당
National Fascist Party
1921년 11월 베니토 무솔리니가 이탈리아 전투자동맹을 정당으로 바꾸어 만든 이탈리아 파시즘의 정당. 1922년 로마 진군으로 정권을 잡았고, 1920년대 중후반부터 이탈리아 왕국의 유일 정당이 되었다. 1943년 7월 파시스트 대평의회가 무솔리니를 실각시킨 뒤 바돌리오 정부가 해산했다.
상세
무솔리니는 1919년 3월 23일 밀라노 산세폴크로 광장에서 이탈리아 전투자동맹을 세웠다. 1921년 11월 7~10일 로마에서 열린 제3차 대회에서 이미 31만 2,000명을 거느린 운동을 해산하고 국가파시스트당을 세웠으며, 첫 서기는 미켈레 비앙키였다. 초기에 검은셔츠단(스콰드리스티)은 포강 유역에서 사회주의자와 그 기관을 폭력으로 공격해 지주들의 지지를 얻었다. 당은 전투자동맹의 공화주의를 버리고 우파로 돌아섰고, 민족주의와 영토 확장, 계급 협조를 내세운 조합주의 경제를 주장했다.
1922년 10월 24일 나폴리 대회에서 무솔리니는 「우리의 강령은 간단하다, 이탈리아를 다스리겠다」고 선언했다. 10월 28일 3만 명이 채 안 되는 파시스트가 로마 진군에 나섰고, 국왕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가 계엄령 서명을 거부한 뒤 10월 31일 무솔리니에게 조각을 맡겼다. 12월 15일 당의 최고기관인 파시스트 대평의회가 만들어졌다. 1923년 당은 이탈리아 민족주의자협회를 흡수했다. 아체르보법으로 선거제를 바꾼 당은 1924년 4월 선거에서 이겼고, 이를 비판한 사회주의자 자코모 마테오티가 살해되었다.
이탈리아어 출처는 1926년 이른바 「초파시스트법」 뒤 당이 유일 합법 정당이 되었다고 적고, 영어 출처는 1925년 초부터 사실상 유일 정당이었고 1928년 법으로 공식화되었다고 적는다. 당원 자격은 1933년 공직의 기본 요건, 1938년 취업 요건이 되었고, 1939년 의회는 당원으로만 채워진 파쇼·조합원으로 바뀌었다. 1943년 7월 24~25일 대평의회가 디노 그란디의 의제를 가결한 뒤 무솔리니가 체포되었고, 피에트로 바돌리오 정부가 7월 27일 사실상 당을 해산한 뒤 8월 2일 법령으로 확정했다. 9월 독일이 구출한 무솔리니는 살로 공화국의 공화파시스트당으로 당을 되살렸다. 이탈리아 헌법은 해산된 파시스트당의 재건을 금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