護國戰爭 · 1915.12.25–1916.07.14

호국전쟁

National Protection War

위안스카이가 1915년 12월 「중화제국」 황제를 칭하자 윈난의 차이어·탕지야오·리례쥔이 12월 25일 독립을 선언하고 호국군을 일으켜 벌인 내전. 남방 성들이 잇달아 독립하고 북양군 장군들도 등을 돌려 위안은 1916년 3월 22일 제정을 취소했으며, 6월 그가 죽은 뒤 7월 14일 각 성이 독립을 거두며 끝났다. 국민당은 이를 「제3혁명」이라 불렀고, 북양 정부의 통제력이 무너져 군벌 시대가 열렸다.

상세

발단: 21개조 요구를 받아들인 뒤 위안스카이 주변에서는 제정 복고 운동이 벌어졌다. 1915년 12월 11일 국민대표 1,993명이 만장일치로 입헌군주제를 의결했고, 위안은 12일 「중화제국」을 선포하고 연호를 홍헌으로 정했다. 베이징에서 감시받던 차이어는 스승 량치차오와 뜻을 맞추고 11월 베이징을 빠져나가 일본을 거쳐 윈난으로 돌아갔다.

전개: 12월 23일 차이어는 이틀 안에 제정을 취소하라는 전보를 보냈고, 25일 탕지야오·리례쥔과 함께 쿤밍에서 윈난의 독립을 선언했다. 구이저우가 27일 뒤따랐고 1916년 3월 광시, 4월 광둥·저장, 5월 산시(陝西)·쓰촨·후난이 독립했다. 위안은 8만 명을 보냈지만 쓰촨에서 패했다. 급료를 받지 못한 북양군은 적극적으로 싸우지 않았고, 펑궈장·돤치루이 같은 측근도 제정에 반대했다. 일본도 위안 타도 쪽으로 돌아서 양측을 교전 상태로 인정했다.

결과: 위안은 3월 22일 제정을 취소하고 대총통으로 돌아가려 했으나 6월 6일 죽었다. 리위안훙이 대총통을 이어 임시약법과 국회를 되살렸고, 7월 14일 각 성이 독립 선언을 거두었다. 그러나 독립했던 성들은 그대로 군벌의 손에 남았고, 베이징 정부는 남방을 다시 통제하지 못했다. 이 전쟁에는 뒤에 홍군 총사령이 된 주더가 차이어 휘하의 연대장으로 참가했다.

관련 인물

관련 역사 사건

출처

  1. 위키백과 (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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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위키백과 (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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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위키백과 (영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