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신민당 (朝鮮新民黨) · 1946

조선신민당

New People's Party of Korea

1946년 2월 16일 김두봉이 중국에서 돌아온 연안파 공산주의자들과 함께 조선독립동맹을 바탕으로 평양에서 창당한 정당. 조선공산당보다 온건한 입장으로 넓은 지지를 얻었으나, 1946년 8월 북조선공산당과 합당해 북조선로동당이 되었다. 이남의 남조선신민당은 11월 남조선로동당 결성에 참여했다.

상세

김두봉은 조선민족혁명당과 조선의용대에서 활동하다가 1942년 4월 화북의 연안에 정착했다. 그곳에서 최창익 일파와 김무정이 합류했고, 김두봉은 같은 해 7월 정치 조직인 조선독립동맹과 군사 조직인 조선의용군을 만들었다. 1945년 12월 13일 조직을 이끌고 귀국했으나 조선의용군은 무장 해제를 당했다. 조선독립동맹은 모스크바 3상회의 지지 성명을 냈고, 1946년 2월 이남에 백남운을 위원장으로 하는 경성특별위원회를 두었다.

1946년 2월 8일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 부위원장으로 뽑힌 김두봉은 2월 16일 조선독립동맹을 바탕으로 조선신민당을 창당했다. 한국어 출처에 따르면 당명은 마오쩌둥의 신민주주의에서 땄다. 주석은 김두봉, 부주석은 최창익과 한빈이었고, 백남운·허정숙·박효삼 등이 주요 간부였다. 당은 조선공산당보다 온건한 입장을 취해 여러 계층에게 인기가 높았다.

7월 22일 북조선공산당은 신민당·조선민주당·천도교청우당과 함께 북조선민주주의민족통일전선을 결성했다. 영어 출처에 따르면 스탈린의 직접 지시에 따라 7월 29일 두 당이 중앙위원회 합동 전원회의를 열어 합당에 합의했고, 8월 28~30일 창립대회에서 북조선로동당이 되었다. 새 당의 당원 17만여 명 가운데 13만 4천 명이 공산당, 3만 5천 명이 신민당 출신이었다. 한국어 출처는 이 합당이 소련의 압력 아래 추진되었다고 적는다.

합당을 앞둔 7월 13일 신민당은 경성특별위원회를 남조선신민당 중앙위원회로 바꾸어 독립시켰다. 남조선신민당은 이남의 조선공산당·조선인민당과 합당을 논의했으나, 박헌영이 11월 남조선로동당을 세우자 둘로 갈라졌다. 중앙간부파는 남로당에 흡수되었고, 반간부파는 조선공산당 대회파, 조선인민당 31인파와 함께 사회로동당을 결성하면서 남조선신민당도 사라졌다.

소속 인물

관련 인물

관련 역사 사건

출처

  1. 위키백과 (영문)
  2. 위키백과 (한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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