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조선로동당 (南朝鮮勞動黨) · 1946–1949

남조선로동당

Workers' Party of South Korea

1946년 11월 23일 서울에서 조선공산당, 남조선신민당, 조선인민당 일부가 합당해 결성한 38선 이남의 공산당. 허헌이 위원장, 박헌영이 부위원장이었고, 미군정과 대한민국 정부에 맞서 총파업과 무장 투쟁을 이끌었다. 1949년 6월 북조선로동당과 비밀리에 합당해 조선로동당이 되었다.

상세

정판사 위조지폐 사건 등으로 조선공산당의 활동이 거의 멈추자, 이남의 좌파는 조선공산당·조선인민당·남조선신민당을 합쳐 세력을 다시 묶으려 했다. 합당은 1946년 9월 3일 발표되었고, 11월 22~23일 첫 대회가 열려 허헌이 위원장, 박헌영이 부위원장으로 뽑혔다. 영어 출처는 조선인민당 가운데 이른바 「48인파」만 합류했다고 적는다. 여운형은 박헌영과 주도권을 다투다 갈라서 뒤에 근로인민당을 세웠고, 합당에 반대한 세력은 따로 사회로동당을 만들었다. 비합법 노동운동인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전평)가 당과 연결되어 있었다.

미군정이 당을 불법화하자 당은 비밀 세포망을 조직했고, 영어 출처에 따르면 당원은 약 36만 명이었다. 당은 처음에 합법 활동과 함께 노동자·농민의 파업을 이끌었는데, 대표적인 것이 대구 10·1 사건이다. 단독 정부 수립 운동이 벌어지자 1947년부터 무장 게릴라 투쟁을 시작했고, 1948년 2월 7일 단독 정부 수립에 반대하는 총파업을 일으켰다. 4월 3일 당은 김달삼 등을 중심으로 제주도에서 무장 봉기를 일으켰고, 그 진압 과정에서 수만 명의 제주도민이 살해되었다.

1948년 10월 국군 14연대의 남로당원 지창수가 제주 진압 명령을 거부하고 부대를 이끌고 봉기해 여수와 순천을 장악했다(여순 사건). 한국어 출처는 당중앙이 우발적인 봉기를 뒤늦게 승인한 것으로 보며, 진압 뒤 정부의 대대적 탄압으로 수천 명의 민간인이 공모자로 몰려 살해되었고 당은 사실상 와해되었다고 적는다. 1948년 제정된 국가보안법은 남로당을 불법화했고, 당 지도부의 상당수는 평양으로 옮겨 갔다.

1948년 8월 남로당과 북로당은 연합중앙위원회를 두었고, 1949년 6월 24일 합당해 조선로동당이 되었다. 합당은 일반 당원에게도 숨긴 비밀 합당이어서 이남의 문서에는 한국전쟁 전까지 남로당이라는 이름이 계속 쓰였다. 합당 뒤 김일성이 위원장, 박헌영이 부위원장이 되었고, 옛 남로당원들은 국내파로 불렸다. 전쟁 중 보도연맹 학살로 당원과 공산주의 동조 혐의자 6만~20만 명이 한국군에게 살해되었다. 북쪽에서는 1953년 이승엽·박헌영이 「미제 간첩」 혐의로 구속된 것을 시작으로 남로당 출신 지도자들이 숙청되었다.

소속 인물

관련 인물

관련 역사 사건

출처

  1. 위키백과 (영문)
  2. 위키백과 (한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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