Октябрь · 1927 (1927년 제작, 1928년 초 개봉)

10월 (영화)

October (film)

10월 혁명 10주년을 기념해 세르게이 예이젠시테인과 그리고리 알렉산드로프가 만든 1927년 소련 무성영화. 임시정부의 몰락에서 겨울궁전 점령까지를 그렸고, 겨울궁전 공격 장면은 뒤에 기록 필름처럼 쓰였다. 스탈린과 트로츠키의 권력 투쟁 속에 트로츠키의 장면이 잘렸다. 해외에는 《세계를 뒤흔든 열흘》이라는 제목으로 나갔다.

상세

무슨 이야기인가?

군중이 차르의 동상을 끌어내리는 장면으로 영화가 열린다. 그러나 곧 “같은 옛이야기”다. 임시정부 아래 전쟁과 굶주림은 그대로다. 4월, 레닌이 핀란드역에 돌아온다. 7월, 군대가 시위대에 총을 쏘고, 도개교가 올라가며 다리 위의 시신이 매달려 떨어지고, 부르주아들이 볼셰비키 신문을 강에 던진다. 케렌스키는 태엽 공작새와 나폴레옹에 빗대어 조롱당한다. 코르닐로프가 “신과 조국을 위해” 수도로 진격하자 볼셰비키가 방어에 나서고, 10월에 레닌이 스몰니로 돌아와 봉기를 지휘한다. 순양함 오로라호가 다가오고, 군중이 겨울궁전으로 밀려들어 경비대를 제압한다. 궁전에서 값진 물건을 뒤지던 병사들은 주머니를 뒤집혀 내놓는다. 문을 부수고 들어가 임시정부 각료들을 체포하면, 안토노프-옵세옌코가 정부 폐지 선언문을 쓰고, 세계 곳곳의 시계가 혁명이 성공한 시각을 가리킨다. 이튿날 새 정부가 포고를 내놓기 시작한다.

주인공은 없다. 예이젠시테인은 뚜렷한 주인공과 줄거리 대신 편집대에서 영화를 만들어 내려 했다.

왜 “이해할 수 없다”는 말을 들었나?

이 영화의 가장 유명한 대목은 몽타주 이론에서 말하는 지적 몽타주다. “신과 조국을 위해”라는 구호를 해체하려고 바로크 예수상에서 힌두 신, 부처, 아스텍 신, 원시 우상까지 점점 더 낯선 신상을 이어 붙인다. 모든 신이 다를 바 없다는 말을 그림으로 하는 것이다. 그러나 관객에게는 어려웠다. 관객은 《전함 포툠킨》만큼 들지 않았고, 1933년 영화는 상영에서 완전히 내려졌다. 당국은 대중이 이해할 수 없는 “형식주의”라고 비판했다. 빅토르 시클롭스키는 “예이젠시테인은 겨울궁전의 만 개 방에서 길을 잃었다”고 썼다. 프세볼로트 푸돕킨의 평은 반대로 유명하다. “저렇게 힘찬 실패를 나도 해 보고 싶다.”

누가 진짜 레닌을 연기했나?

전문 배우는 거의 쓰지 않았다. 레닌 역에는 얼굴이 닮은 시멘트 공장 노동자 바실리 니칸드로프를 데려와 대머리처럼 머리를 밀었다. 배우의 연기로 레닌을 그리려 한 영화사 최초의 시도였다. 알렉산드르 고로드니츠키의 회고에 따르면 지노비예프는 지노비예프의 친형제가, 트로츠키는 닮은 치과 의사가 연기했다. 니콜라이 포드보이스키는 실제 참가자로 직접 나왔고, 크룹스카야와 함께 자문을 맡았다. 마야콥스키는 이 레닌을 참을 수 없어 했다. 그는 니칸드로프의 몸짓 뒤에는 “생각이 전혀 없는 공허”만 있다면서 “레닌이 아니라 레닌의 동상들을 닮았다”는 동료의 말을 옮겼다.

어떤 혁명을 보여 주고 어떤 혁명을 지웠나?

10주년에 맞추지 못한 것은 정치 때문이기도 했다. 1928년 초에 가서야 개봉했고, 마지막 편집 단계에서 트로츠키, 안토노프-옵세옌코, 블라디미르 넵스키가 삭제되었다. 권력 투쟁이 편집대까지 들어온 것이다. 미국 등 해외에는 존 리드의 책 제목을 딴 《세계를 뒤흔든 열흘》로 나갔다.

겨울궁전을 군중이 휩쓸고 들어가는 공격은 실제와 다르다. 러시아어 위키백과에 따르면 실제 점령은 오랜 산발적 총격 끝에 무장 대원들이 경비가 없는 입구로 들어간 일이었고, 오로라호는 사격 각도가 나오지 않아 공포탄 한 발을 쏘았을 뿐이다. 영화의 장면은 오히려 1920년 수천 명이 참가해 10만 관중 앞에서 재연한 공연 《겨울궁전 점령》에 가까웠다. 그런데도 이 장면은 기록 영상과 역사책에 들어가 믿을 만한 사진 기록처럼 쓰였다. 혁명 10주년을 축하하는 영화가 혁명의 기억 자체를 만들어 낸 셈이다. 이 영화가 역사의 이야기이면서 그 역사의 일부가 되었다는 평이 나오는 까닭이다.

왜 음악까지 문제였나?

《전함 포툠킨》의 음악에 반한 예이젠시테인은 이번에도 에드문트 마이젤에게 곡을 맡겼다. 모스크바는 그 곡을 너무 전위적이라고 보았고, 마이젤의 음악은 해외용 단축판에만 붙었다. 1960년대 말 알렉산드로프가 모스필름에서 새 판을 만들면서 쇼스타코비치의 기존 곡을 엮어 넣었고, 오늘날 흔히 보는 것이 이 판이다. 마이젤의 음악은 2011년 독일과 러시아 기관의 공동 작업으로 복원되었다.

관련 인물

관련 역사 사건

출처

  1. 위키백과 (러시아어)
  2. 위키백과 (영문)
  3. 위키백과 (러시아어)
  4. 위키백과 (러시아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