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데르-나이세 선
Oder-Neisse line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폴란드와 독일 사이에 설정된 국경으로, 오데르 강과 루사티아 나이세 강을 따라 이어진 선을 가리킨다. 1945년 포츠담 회담에서 독일의 옛 동부 영토를 평화조약 체결 전까지 폴란드의 행정 관할에 맡기기로 하면서 잠정적으로 설정되었고, 소련의 이오시프 스탈린이 폴란드의 동부(커즌 선 동쪽) 영토 상실에 대한 보상으로 이 국경을 사실상 결정했다. 동독은 1950년에 이를 승인했으나 서독은 오랫동안 거부하다 1970년 바르샤바 조약으로 제한적 승인을 했고, 1990년 독일-폴란드 국경 조약으로 통일 독일이 국제법상 최종 승인했다.
상세
전사의 기원과 전시 결정
오데르-나이세 선은 제2차 세계대전 중에 갑자기 만들어진 구상이 아니었다. 10세기부터 13세기까지 피아스트 왕조 폴란드의 서부 경계는 실레시아의 하류 오데르 강이었고, 제1차 세계대전 무렵부터 이 선을 되살려 독일을 막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1918년 볼레스와프 야키미아크는 오데르 강과 루사티아 나이세 강을 따라 국경을 긋자고 제안했고, 전간기 폴란드 민족주의자들 사이에서는 '서부 사상'이 퍼졌다. 다만 이 구상은 오랫동안 진지하게 검토되지 않았고, 전후 폴란드 공산당은 서부 국경에 관한 독자적 전문성이 없어 민족민주당의 서부 사상을 받아들였다.
전쟁 중 나치 독일의 점령과 대량 학살을 겪으면서 안전한 국경에 대한 요구가 커졌다. 1943년 말 테헤란 회담에서 스탈린은 폴란드 서부 국경을 오데르 강까지 확장하는 문제를 제기했고, 루스벨트는 원칙적으로 동의하면서도 국내 선거 때문에 공개할 수 없다고 했다. 1945년 2월 얄타 회담에서 미국과 영국은 동쪽으로는 커즌 선을, 서쪽으로는 오데르 강을 기본선으로 삼는 데 합의했으나, 서부 나이세를 쓸지 동부 나이세를 쓸지는 확정하지 못했다. 처칠은 서부 나이세에 반대하며 독일인 대량 추방에 대한 우려를 표했고, 스탈린은 이미 많은 독일인이 붉은 군대 앞에서 도망쳤다고 답했다.
포츠담과 영토·인구의 재편
1945년 8월 2일 포츠담 협정은 최종 평화조약을 앞두고 독일 영토 중 오데르-나이세 선 동쪽을 폴란드 행정 관리 아래에 두고, 남아 있는 독일인을 추방하기로 결정했다. 이 선은 독일 1937년 경계 기준 영토의 약 4분의 1, 바이마르 공화국 면적 기준 23.8퍼센트에 해당하는 지역을 폴란드와 소련에 넘겼다. 실레시아와 포메라니아, 동프로이센 남부 등 대부분은 폴란드에, 동프로이센 북부(쾨니히스베르크, 칼리닌그라드)는 소련에 돌아갔다. 오데르-나이세 선은 체코슬로바키아 국경에서 발트해 오데르 하구까지 472킬로미터로, 폴란드와 독일 사이의 가장 짧은 국경이었다.
폴란드는 커즌 선 동쪽의 187,000제곱킬로미터를 소련에 넘긴 대가로 구 독일 영토 112,000제곱킬로미터를 받았다. 뒤이은 인구 이동은 동유럽 전체에서 1,400만 명 규모에 이르렀다. 폴란드가 넘겨받은 지역에 남아 있던 독일인은 거의 모두 추방되었고, 독일로 끌려갔던 폴란드인 노동자들과 소련에 합병된 구 폴란드 동부의 폴란드인들이 새 영토로 이주했다. 국경은 여러 도시를 둘로 갈랐다. 게를리츠/즈고르젤레츠, 구벤/구빈, 프랑크푸르트(오데르)/스우비체, 바트 무스카우/웽크니차가 그렇다.
인정을 둘러싼 40여 년
동독 집권당인 사회주의통일당은 처음에는 오데르-나이세 선을 거부했으나, 소련의 압력 아래 1950년 7월 6일 게를리츠(즈고르젤레츠) 조약으로 폴란드와의 국경을 인정했다. 서독은 이 조약을 국제법상 정당한 조약으로 인정하지 않았고, 1949년 집권한 아데나워 정부는 독일이 재통일되면 1937년 1월 1일 기준의 동부 영토 전체를 요구하겠다고 밝혔다. 1952년 스탈린은 독일 재통일의 조건으로 오데르-나이세 선의 영구적 인정을 내걸었으나 아데나워는 이를 거부했다. 서독 정계에서는 추방민 로비가 강력한 정치 세력이었고, 기민당·기사당·자민당·사민당 모두 국경 인정에 반대했다.
빌리 브란트의 동방정책과 함께 서독의 태도는 바뀌었다. 1970년 서독은 폴란드와 바르샤바 조약을 맺어 오데르-나이세 선을 현실로 인정하고 무력으로 바꾸지 않겠다고 했다. 다만 최종적 법적 확정은 통일 독일의 몫으로 남았다. 1990년 3월 헬무트 콜 서독 총리가 재통일 독일이 오데르-나이세 선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도 있다고 시사해 국제적 파문이 일었고, 그는 곧 입장을 바꿨다. 1990년 11월 14일 통일 독일과 폴란드는 국경을 확정하는 조약을 맺었고, 이 조약은 1992년 1월 16일 발효되었다.
관련 인물
출처
- 위키백과 (영문) core facts: border follows the Oder and Lusatian Neisse; set provisionally at Potsdam (2 August 1945) pending a peace settlement; Stalin the final arbiter; East Germany recognised via Treaty of Zgorzelec 1950; West Germany accepted with reservations in 1970 (Treaty of Warsaw), final recognition in 1990 German-Polish Border Treaty; compensation for territory east of the Curzon Line.
- opil.ouplaw.com Oxford Public International Law (Max Planck Encyclopedia) entry confirming the 14 November 1990 German-Polish Border Treaty as the instrument of final recognition under international law.
- 위키백과 (영문) final recognition of the Oder-Neisse border was a precondition of full German sovereignty and a term of the Unification Treaty.
- 위키백과 (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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