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tőfi Kör · 1955–1956

페퇴피 서클

Petőfi Circle

1955년 헝가리 노동청년동맹(DISZ) 산하에 설립된 청년 지식인 토론 모임. 1956년 봄부터 라코시 체제의 민주화와 언론 자유를 공개적으로 요구하는 대중 토론회를 열었으며, 6월 27일 약 7천 명이 운집한 언론토론회와 러이크 라슬로의 미망인 러이크 율리어의 연설이 포함된 '빨치산 토론회'는 헝가리 혁명의 직접적 도화선이 되었다. 1956년 6월 30일 당 중앙위원회에 의해 금지되었고 미코얀은 이를 '사상적 포즈난'이라 불렀다.

상세

결성과 지도부

페퇴피 서클은 1954년 헝가리 국립박물관 관계자들의 참여 속에 준비되었고, 창설의 공은 시인 라카토시 이슈트반에게 돌려진다. 처음에는 계몽가 베셰녜이 죄르지의 이름을 땄으며, 탄초시 가보르, 너지 벌라주, 헤게뒤시 벌라주 언드라시가 합류하면서 정치적 문제가 다루어졌다. 지적 지도부는 개혁 성향의 공산주의자, 곧 너지 임레의 지지자들이었고, 마르크스주의 철학자 루카치 죄르지의 영향도 감지되었다.

1955년 3월 25일 코슈트 토론클럽에서 열린 첫 회합은 이미 노동청년동맹(DISZ)의 틀 안에서 이루어졌다. 서클의 지도자로는 경력이 있던 청년동맹 간부 탄초시 가보르가 선출되었다. 그는 당시로서는 이례적으로 토론의 자유 공간을 넓혔고, 상투적인 개회 연설을 없앴다. 1956년 4월에는 유고슬라비아 문학의 밤을 열었는데, 이는 소련 진영과 유고슬라비아의 관계가 최악이던 시기에 이단으로 여겨질 만한 일이었다.

토론회와 금지

서클의 첫 공개 행사는 1956년 3월 17일에야 열렸고, 그 뒤 열두 차례의 주요 토론이 이어졌다. 토론회는 큰 인기를 끌었다. 6월 27일의 언론 토론회는 확성기를 통해 약 7천 명이 들었다. 이틀 뒤 포즈난에서 노동자 봉기가 일어나자, 6월 30일 헝가리 노동인민당 중앙위원회는 폴란드 사건과 이 토론회를 함께 다루며 서클을 금지했고, 항의한 당원들을 제명했다. 라코시 마차시를 교체하기 위해 소련에서 온 미코얀은 7월 17~18일 중앙위원회 회의에서 서클을 '이데올로기적 포즈난'이라 불렀다. 내무부는 지도 인물들의 체포를 준비하기도 했으나, 소련 지도부는 그렇게 인기 없는 조치를 실행할 힘이 당에 이미 없다고 판단했다.

빨치산 토론회와 러이크 율리어

6월 27일의 언론 토론회는 헝가리 사회에서 전례가 없던 사건이었다. 티슈티 하즈(옛 장교 사교장)의 바치 거리 대강당에는 방과 안뜰, 거리까지 사람들이 몰려 거의 7천 명이 모였다. 작가와 언론인들은 언론의 자유와 라코시 퇴진을 요구했고, 데리 티보르는 자유의 결핍이 문제의 근원이라며 그 책임자들이 자리를 떠나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러이크 율리어가 처음 공개적으로 나선 것은 6월 18일의 '빨치산 토론회'였다. 그녀는 1949년 처형된 남편을 좋은 공산주의자로 기억하며, 지금 희생자들을 복권시키려는 사람들이 바로 그들을 고문하고 교수형에 처한 사람들이라고 물었다. 약 2천 명이 기립 박수를 보냈고, 이 연설은 충성스러운 공산주의자가 라코시 체제를 정당하게 비판할 수 있는 언어적 틀을 만들었다.

1956년 가을과 탄압

서클은 당이 이미 조직적 적으로 지목한 뒤인 1956년 가을에야 활동을 재개했다. 10월 22일 저녁 회의는 중앙위원회 소집과 라코시의 축출, 너지 임레의 정부 참여를 요구하는 결의를 채택했으나, 급진성에서는 이미 학생 조직 MEFESZ에 뒤져 있었다. 10월 23일에는 고여바르에서 회의를 열던 중 몇 블록 남쪽에서 군중이 라디오 방송국을 공격하고 있었다. 11월 3일 서클을 다시 소집하려는 구상은 11월 4일 소련군 침공으로 무산되었다. 진압기에 서클은 혁명을 지지한 조직으로 분류되었고, 탄초시 가보르는 1958년 8월 18일 15년형을 선고받았다(1962년 봄 사면).

관련 인물

관련 역사 사건

출처

  1. Russian Wikipedia «Кружок Петёфи» — formation in 1954 under DISZ, first public meeting 17 March 1956, 12 debates, press debate 27 June with ~7,000 attendees, ban 30 June, Mikoyan called it 'ideological Poznań':
  2. Hungarian Wikipedia «Petőfi Kör» — detailed history of debates, Tánczos Gábor as secretary, the press debate where Tibor Déry called for removal of Rákosi, and the Circle's role in the ferment before the revolution:
  3. Peter Fryer, Hungarian Tragedy (Marxists.org) — firsthand account of the all-night meeting with ~6,000 attendees, Rajk's widow's speech, demands for democratisation and intellectual liberty:
  4. Autonomies.org — account of Júlia Rajk's speech at the Petőfi Circle, overflowing crowds, speeches relayed by loudspeakers:
  5. OpenEdition Journals / Clio — Andrea Pető on Júlia Rajk and the Petőfi Circle's 'partisan debate' of 18 June 1956 as creating the linguistic framework for legitimate criticism of the Rákosi regime:
  6. 위키백과 (러시아어)
  7. hu.wikipedia.org
  8. journals.openedition.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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