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 통일노동자당
Polish United Workers' Party
1948년 12월 폴란드 노동자당이 폴란드 사회당을 흡수해 만든 마르크스-레닌주의 정당. 1948년부터 1989년까지 폴란드 인민공화국을 일당 체제로 다스렸고, 통일인민당과 민주당을 위성 정당으로 거느렸다. 1989년 원탁회의와 6월 4일 선거에서 연대노조에 패한 뒤 1990년 1월 마지막 당대회에서 스스로 해산했다.
상세
당은 1948년 12월 15~21일 바르샤바 공과대학 본관에서 열린 노동자당과 사회당의 통합 대회에서 창당했다. 합당에 반대한 사회당 활동가들은 미리 밀려났고, 노동자당 안에서는 「우익 민족주의 편향」으로 몰린 고무우카 등이 배제되었다. 사회당원의 25% 이상이 밀려나거나 정치에서 쫓겨난 것으로 추산된다. 폴란드어 출처에 따르면 창당 당원은 153만 7천 명(노동자당 100만 6천, 사회당 53만 1천)이었다. 정치국은 비에루트·베르만·치란키에비치·민츠 등으로 꾸려졌고, 1948~1956년 당을 이끈 비에루트 아래에서 스탈린주의 체제와 정치 재판이 이어졌다.
1956년 3월 비에루트가 모스크바에서 죽은 뒤 지도부는 나톨린파와 푸와비파로 갈라졌고, 에드바르트 오하프가 제1서기가 되었다. 포즈난 6월 사건 뒤 고무우카가 제1서기로 돌아와 「폴란드의 사회주의 길」을 내걸었다. 1957~1958년 당원 재심사로 20만 7천 명(15.5%)이 제명되었다. 1968년 당은 반시온주의를 내건 반유대 캠페인을 벌였고, 오하프는 이에 항의해 정치국과 중앙위원회에서 물러났다. 1970년 12월 조선소 노동자 유혈 진압 뒤 고무우카는 에드바르트 기에레크로 교체되었다.
기에레크는 외채에 기대어 산업 현대화와 소비재 공급을 추진했다. 폴란드어 출처에 따르면 당원은 1970년 232만 명에서 1980년 309만 2천 명(다른 자료로는 315만 명)으로 정점에 이르렀고, 영어 출처는 1980년 약 300만 명, 1970년대 말 350만 명 이상이라고 적는다. 1976년과 1980년 가격 인상은 파업을 불렀고, 1980년 당은 연대노조를 합법화해야 했다. 1981년 10월 중앙위원회는 스타니스와프 카니아를 물러나게 하고 총리이자 국방장관인 보이치에흐 야루젤스키를 제1서기로 뽑았으며, 야루젤스키는 12월 13일 계엄을 선포했다. 연대노조 합법화와 계엄 이후 85만 명이 탈당했다(폴란드어 출처).
1988년 파업 뒤 당은 연대노조 지도자들과 협상에 나섰고, 1989년 2월 6일부터 4월 15일까지 원탁회의가 열렸다. 1989년 6월 4일 선거에서 연대노조가 승리하면서 40년간의 공산당 통치가 끝났다. 1990년 1월 27~29일 제11차 당대회에서 당은 해산했고, 미에치스와프 라코프스키·레셰크 밀레르 등은 폴란드 공화국 사회민주당(SdRP)을 세웠다. 새 당 창설에 소련 공산당의 자금 100만 달러 이상이 쓰인 「모스크바 차관」은 정치적 논란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