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 노동자당
Polish Workers' Party
1942년 1월 5일 독일 점령하 바르샤바에서 소련에서 들어온 폴란드 공산주의자들이 현지 공산주의 그룹들과 함께 세운 공산당. 해산된 폴란드 공산당을 잇는 당이었으나, 스탈린의 지시로 당명에 「공산」이라는 말을 넣지 않았다. 1944년 7월부터 소련의 지배 아래 폴란드의 집권당이 되었고, 1948년 12월 폴란드 사회당과 합쳐 폴란드 통일노동자당이 되었다.
상세
1941년 12월 말 마르첼리 노보트코, 파베우 핀데르, 볼레스와프 모워예츠, 마우고자타 포르날스카 등 폴란드 공산주의자 「주도 그룹」이 소련 공군기에서 낙하산으로 점령지 폴란드에 들어왔다. 폴란드어 출처에 따르면 당명은 스탈린이 1941년 8월 27일 디미트로프에게 「공산당」이라는 이름은 미래의 당원을 겁먹게 할 수 있으니 쓰지 말라고 한 데서 나왔다. 당은 1942년 1월 5일 바르샤바에서 이들이 현지 공산주의 그룹들과 합쳐 창당했고, 반나치 애국 전선을 표방하며 군사 조직 인민근위대(1944년 1월부터 인민군)를 두었다. 당원은 영어 출처로 1942년 여름 약 6천 명, 폴란드어 출처로 1942년 수천 명이었다.
노보트코가 1942년 11월 28일 살해되자 모워예츠가 서기직을 차지했으나, 살해에 관여했다는 의심을 받아 당 법정의 결정으로 처형되었다. 1943년 1월 핀데르가 서기가 되었고, 1943년 11월 브와디스와프 고무우카가 서기가 되었다. 1943년 2월 망명정부 대표부·국내군과의 협력 협상은 성과 없이 끝났고, 4월 소련이 망명정부와 단교한 뒤 당은 망명정부 측에 적대적으로 돌아섰다. 1944년 1월 1일 당은 국가국민평의회를 세웠고, 의장은 볼레스와프 비에루트였다.
1944년 7월 루블린에서 폴란드 민족해방위원회가 세워져 토지 개혁과 재건을 약속했고, 이는 임시정부를 거쳐 1945년 6월 민족통일임시정부로 바뀌었으며 노동자당이 이를 장악했다. 폴란드어 출처에 따르면 당원은 1944년 7월 약 2만 명에서 1945년 4월 30만 명, 1946년 말 55만 5천 명, 1947년 말 82만 명으로 늘었다. 미코와이치크의 폴란드 인민당이 유일한 합법 야당으로 남았고, 1946년 국민투표와 1947년 총선은 조작되어 노동자당 중심 「민주 블록」의 승리로 발표되었다.
냉전이 깊어지자 고무우카의 「폴란드의 사회주의 길」은 민족주의적 편향으로 비판받았고, 1948년 8월 중앙위원회는 비에루트를 서기장으로 세웠다. 1948년 12월 노동자당은 숙청된 폴란드 사회당과 합쳐 폴란드 통일노동자당이 되었다. 폴란드어 출처는 합당 때 노동자당 당원을 약 100만 명, 사회당 당원을 50만여 명으로 적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