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러시아 임시정부
Provisional All-Russian Government
1918년 9월 23일 우파 국가회의에서 코무치와 시베리아 임시정부 등 동부 반볼셰비키 세력이 타협해 세운 5인 집정부 형태의 정부. 흔히 우파 디렉토리라 불린다. 제헌의회가 다시 열릴 때까지 러시아의 유일한 최고 권력임을 선언했으나, 11월 18일 옴스크 쿠데타로 무너지고 콜차크가 최고 통치자가 되었다.
상세
9월 8~23일 우파에서 열린 국가회의에는 170명의 대의원이 모였다. 급진파는 새 정부가 옛 제헌의회에 책임지기를, 보수파는 외부 통제 없는 권위적 정부를 원했고, 타협 끝에 의장 압크센티예프를 비롯한 5인 디렉토리가 섰으며 1919년 1월 1일까지 제헌의원 250명, 2월 1일까지 170명이 모이면 제헌의회가 다시 활동하기로 했다. 정부는 지역 정부들의 주권을 없애고 「넓은 자치」로 바꾸었으며, 브레스트 조약을 인정하지 않고 독일과의 전쟁을 이어 간다고 선언했다. 10월 9일 적군의 진격을 피해 옴스크로 옮긴 뒤 자체 행정 기구 없이 시베리아 임시정부의 기관에 의지했고, 11월 4일 볼로고츠키를 수반으로 하는 각료회의를 두었다. 11월 17일 밤 크라실니코프의 카자크 부대가 압크센티예프와 젠지노프를 체포했고, 이튿날 각료회의는 전쟁장관 콜차크에게 최고 권력을 넘겼다. 러시아어 출처에 따르면 이 정부는 스스로를 10월 혁명으로 중단된 러시아 임시정부의 새 구성으로 여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