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슬로 러이크
László Rajk
라슬로 러이크는 헝가리 공산당 내무장관으로 1949년 마차시 라코시가 조작한 티토주의 간첩 혐의 쇼재판에서 사형당했다. '러이크 재판'은 동유럽 최초의 대규모 스탈린식 숙청으로, 스탈린 사후 복권되어 1956년 10월 6일 20만 명 이상이 운집한 재매장이 이뤄졌다. 이 장례는 3주 후 헝가리 혁명의 심리적 예행연습이자 직접적 도화선이었고, 라코시가 같은 해 3월 에게르 연설에서 재판의 '사법적 오심'을 인정한 것은 체제 정당성의 근본적 균열을 드러냈다.
상세
배경
러이크는 1946년 내무장관에 취임하여 국가보안기관(ÁVH)을 창설하고 반파시스트 투쟁이라는 명분 아래 1,500여 개의 종교·민족주의 단체를 해산시키며 라코시 체제의 공고화에 핵심 역할을 했다. 스페인 내전에서 국제여단 정치위원으로 참전하고 제2차 세계대전 중 지하 저항운동을 이끈 경력은 당내에서 그를 인기 있는 인물로 만들었고, 이것이 오히려 라코시의 경계심을 불러일으켰다.
재판과 처형
1949년 5월 30일 체포된 러이크는 NKVD의 지휘 아래 고문과 회유를 받으며 모든 혐의를 자백했다. 9월 16일부터 24일까지 부다페스트 금속노조 회관에서 열린 공개 재판에서 그와 공동 피고 7명은 '티토주의 간첩', '제국주의의 앞잡이', '호르티의 사슬에 묶인 개'로 규정되었다. 러이크, 티보르 쇠니, 언드라시 설러이는 교수형을 선고받았고, 10월 15일 처형되었다. 연루자 총 15명이 사형, 78명이 징역형을 받았다.
복권과 재매장
스탈린 사후 데스탈린화의 물결 속에서 1955년 사후 복권되었다. 미망인 율리어 러이크는 당국의 제한을 무릅쓰고 완전한 공개 장례를 요구했고, 당내 개혁파와의 연대를 통해 사실상 야당의 입장에서 협상했다. 라코시는 1956년 3월 27일 에게르 당원집회에서 러이크 재판이 '사법적 오심'이었음을 인정했으나 그 발언은 공식 보도되지 않았다. 10월 6일 케레페시 묘지에서 열린 재매장에는 20만~35만 명이 운집했고, '잊지 않겠다'는 동일한 문구의 꽃다발이 산더미처럼 쌓였다. 이 장례는 10월 23일 헝가리 혁명의 직접적 전주곡이 되었다.
문화적 유산
로버트 아드리의 희곡 《영웅들의 그림자》(1958)와 이슈트반 서보의 영화 《햇살의 맛》(1999)에서 러이크의 삶과 죽음이 다루어졌다. 헝가리 집단기억에서 러이크 재판과 재매장은 스탈린주의의 폭력성과 그것을 극복하려는 사회적 동력이 교차한 상징적 사건으로 남아 있다.
관련 인물
관련 역사 사건
출처
- 위키백과 (영문) full biography: career, trial dates, co-defendants, execution, rehabilitation, reburial attendance of 100,000+
- 위키백과 (러시아어) Russian article: trial proceedings, NKVD role, rehabilitation in 1955, reburial as largest pre-uprising demonstration
- journals.openedition.org Andrea Pető, 'Hungary 1956: Júlia Rajk or the power of mourning': reburial drew 350,000, served as psychological 'dress rehearsal' for the revolution, Rákosi's 27 March 1956 Eger spee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