ресталинизация · 1964년–현재

재스탈린화

re-Stalinization

재스탈린화는 탈스탈린화를 부분적으로 되돌리는 과정으로, 스탈린의 이미지를 조용히 복권하고 스탈린 시대 탄압에 대한 비판적 논의를 억압하며 스탈린주의 상징을 다시 활용하는 흐름을 가리킨다. 브레즈네프 시기(1965년 이후)에 처음 나타나, 스탈린의 전시 지도력을 재조명하고 탄압 관련 출판을 검열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으며,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 시기에 일시 중단되었다. 2000년대 푸틴 집권 이후 국가 주도의 재스탈린화가 재개되어, 교과서·미디어·영화·기념비를 통해 스탈린을 '강한 지도자'로 재평가하는 작업이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상세

용어의 성립

재스탈린화라는 말은 1960~70년대 소련의 정치 체제를 가리키는 분석 범주로, 스탈린 사후 형성된 탈스탈린화 노선이 부분적으로 되돌려지는 과정을 뜻한다. 1956년 2월 소련공산당 제20차 대회에서 흐루쇼프가 스탈린 개인숭배를 비판하고 1937~38년 대숙청의 대량 처형 책임을 스탈린에게 돌린 뒤, 당과 국가 기관은 억압 피해자들의 사안을 재심하고 굴라그 수용자들을 석방했다. 재스탈린화는 이 노선에 대한 반동으로 나타났다.

브레즈네프 시기(1964~1982)

1964년 10월 흐루쇼프가 축출되고 브레즈네프가 집권한 뒤, 스탈린 시대의 문제는 논의에서 밀려났다. 러시아어권 사료는 해빙기의 이념적 후퇴 체계의 일부로 '재스탈린화', 즉 스탈린의 은밀한 복권 과정을 꼽는다. 그 신호는 1965년 5월 8일 크렘린의 기념 행사에서 브레즈네프가 오랜 침묵 끝에 스탈린의 이름을 언급하고 회장이 박수로 화답한 것이었다. 1969년 말 스탈린 90세 생일을 앞두고 수슬로프가 복권 조치를 조직했으나, 지식인층의 격렬한 항의로 브레즈네프는 그 캠페인을 접었다. 당시 스탈린은 주로 전시 최고사령관으로서의 지도력이 부분적으로 재조명되었고, 탄압 관련 출판은 검열되었으며, 스탈린주의 상징은 다시 등장했다. 정치사회학자 자슬라프스키는 이 시기를 개인숭배 없는 '신스탈린주의적 타협'으로 규정했다.

페레스트로이카와 그 이후

1985년 3월 고르바초프가 집권하고 글라스노스트가 도입되면서 재스탈린화는 중단되었다. 그러나 고르바초프 자신도 2000년에 스탈린주의와 신스탈린주의의 유산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2000년대 푸틴 집권 이후에는 국가 주도의 재스탈린화가 광범위하게 진행되었다. 대중 매체, 영화, 학계, 교육 기관, 군사 선전과 역사 서술이 모두 동원되었고, 2014년에는 나치즘과 스탈린주의를 비교하는 논의를 처벌하는 이른바 '기억법'이 국가두마를 통과해 형법에 편입되었다. 2007년 푸틴은 역사 교사 회의에서 스탈린을 '잔혹하지만 유능한 지도자'로 그리는 교재를 밀었고, 스탈린 숭배의 부활을 개인적으로 지지해 그를 세계를 파시즘에서 구한 선견지명의 지도자로 묘사했다. 러시아 공산당은 2000년대 이후 푸틴 정부의 승인 아래 수백 기의 스탈린 기념비를 세웠고, 크렘린 벽 묘지에서 스탈린 생일 기념식을 열었다. 레바다 센터 조사에 따르면 스탈린에 대한 호감도는 2015년 이후 상승해 2021년에는 응답자의 70%가 대체로 또는 매우 호의적이라고 답했다.

평가의 쟁점

재스탈린화는 좁게는 은밀한 이미지 복권을, 넓게는 스탈린 시대 억압에 대한 비판적 논의의 억압을 가리킨다. 학자들은 이 현상을 다양한 각도에서 정의한다. 역사가 로이 메드베데프는 스탈린 개인숭배의 복권, 스탈린적 정치 노선과 체제와의 동일시, 스탈린 시기에 대한 향수, 그리고 스탈린 시기 특유의 테러 정치로의 회귀 시도까지 포함하는 것으로 보았다. 고르바초프는 대규모 숙청 없는 완화된 스탈린 체제, 곧 정치적 반대자에 대한 박해와 정치 생활 전반에 대한 총체적 통제는 유지되는 형태로 규정했다. 한편 2016년 정치학자 토머스 셜록은 크렘린이 역사 서술의 일부를 후퇴시켜 스탈린주의를 포함한 소련 과거에 대한 비판적 평가를 지원하는 쪽으로 움직였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따라서 재스탈린화는 단일한 정책이 아니라 시기와 제도에 따라 강도가 달라지는 과정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관련 인물

관련 역사 사건

출처

  1. 위키백과 (러시아어) Russian Wikipedia: 'Частью системы идеологического свёртывания оттепели был процесс «ресталинизации» — подспудной реабилитации Сталина.' First signal: Brezhnev mentioned Stalin by name at the Kremlin on 8 May 1965 to applause. By late 1969 Suslov organized a rehabilitation campaign for Stalin's 90th birthday. Under Andropov, references to repression were removed from school textbooks; under Chernenko, renaming Volgograd to Stalingrad was discussed.
  2. 위키백과 (영문) English Wikipedia: 'Russia under Vladimir Putin underwent an extensive state-backed programme of Re-Stalinization; through mass media, cinema, academia, educational institutions, military propaganda and historiography.' Duma's 2014 'memory law' criminalized comparisons between Nazism and Stalinism.
  3. meduza.io Meduza (Alexey Uvarov): Traces creeping re-Stalinization from Brezhnev through Andropov and Chernenko to Putin, detailing how criticism of Stalin was silenced after 1964 and how the state has re-deployed Stalin's image under Putin.
  4. hoover.org Hoover Institution (Paul Gregory): 'Time is on the side of re-Stalinization.' Documents the Kremlin's campaign to portray Stalin as 'harsh but fair,' the return of the Stalin-era national anthem, erecting monuments, and polling showing declining recognition of Stalin as a 'brutal tyrant.'
  5. meduza.io
  6. 위키백과 (러시아어)
  7. 위키백과 (러시아어)
  8. 위키백과 (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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