Сацыялістычная Савецкая Рэспубліка Беларусь · 1919–1922

벨로루시 사회주의 소비에트 공화국

Socialist Soviet Republic of Byelorussia

1919년 1월 1일 스몰렌스크에서 선포된 소비에트 공화국. 2월 27일 소비에트 리투아니아와 합쳐 리트벨이 되면서 사라졌다가 1920년 7월 31일 같은 이름으로 다시 세워졌고, 1922년 12월 소련 결성 조약에 참여해 소련의 벨로루시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이 되었다. 소련 역사학과 벨라루스 역사학은 이 선포를 벨로루시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의 첫 선포로 본다.

상세

1918년 서부 주의 지도부는 벨라루스를 러시아 소비에트 공화국의 한 지역 단위로 여겼고, 벨라루스인이 아직 뚜렷한 민족 의식을 갖추지 못해 자결 원칙이 맞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반면 1918년 1월 31일 민족인민위원부 안에 세워진 벨라루스 민족위원부의 알렉산드르 체르뱌코프와 즈미체르 질루노비치는 벨라루스 소비에트 공화국이 필요하다고 보았고, 러시아어 출처는 3월 25일 벨라루스 인민공화국의 독립 선포도 이런 인식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고 설명한다. 12월 21~23일 모스크바의 러시아 공산당 벨라루스 지부 회의가 공화국 수립을 결정했고, 12월 30~31일 스몰렌스크의 서부 주 당 조직 제6차 회의는 스스로를 벨로루시 공산당(볼셰비키) 창립 대회로 선언하고 질루노비치를 의장으로 하는 임시 노동자·농민 정부를 뽑았다. 공화국은 비텝스크·그로드노·모길료프·민스크·스몰렌스크현을 아우르는 것으로 선포되었고 정부는 1월 초 민스크로 옮겼다. 그러나 1월 16일 러시아 공산당 중앙위원회는 스몰렌스크·비텝스크·모길료프현을 러시아로 돌리고 소비에트 리투아니아와 합치라고 결정했다. 2월 2~3일 민스크의 제1차 전벨로루시 소비에트 대회는 헌법을 채택하고 영토를 민스크·그로드노현으로 줄였는데, 전쟁 중이라 정부가 실제로 다스린 곳은 민스크현의 6개 군뿐이었다. 2월 27일 공화국은 리트벨에 흡수되었다.

1920년 7월 11일 붉은 군대가 민스크를 되찾은 뒤, 7월 30일 리투아니아·벨로루시 공산당과 프세볼로트 이그나톱스키의 벨로루시 공산주의 조직, 분트가 만나 공화국을 다시 세우기로 하고 벨로루시 군사혁명위원회를 만들었다. 7월 31일 다시 선포된 공화국의 독립 선언은 민스크현의 6개 군에도 못 미치는 경계 안에서 발표되었다. 1921년 1월 16일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과 맺은 노동자·농민 연합 조약은 두 공화국의 독립과 주권을 서로 인정했다. 1921년 리가 조약으로 국경이 정해지면서 서벨라루스는 폴란드에 넘어갔고, 1922년 12월 공화국은 러시아·우크라이나·자캅카스 공화국과 함께 소련 결성 조약에 서명했다. 영어 출처는 소련 역사학이 이 공화국을 소련 가입 뒤의 이름인 벨로루시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불러 왔다고 지적하고, 볼셰비키가 이를 완충 공화국으로 여겼다고 설명한다.

관련 인물

관련 역사 사건

출처

  1. 위키백과 (러시아어)
  2. 위키백과 (영문)
  3. 위키백과 (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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