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순강화 (1992)
Southern tour (1992)
1992년 1월 18일부터 2월 21일까지 공식 직위가 없던 덩샤오핑이 우창·선전·주하이·광저우·상하이를 돌며 한 연설과 담화. 1989년 뒤 멈춘 개혁개방을 다시 밀어붙여 「계획경제가 곧 사회주의는 아니고 시장경제가 곧 자본주의는 아니다」라고 말했고, 그해 10월 제14차 당대회가 「사회주의 시장경제 체제」를 개혁 목표로 확정하는 길을 열었다.
상세
1989년 이후 보수파는 개혁의 속도를 늦추고 「화평연변」을 경계했으며, 1991년 소련 해체는 천윈 같은 원로의 의심을 키웠다. 상하이 《해방일보》의 「황푸핑」 글을 베이징의 매체가 반박하는 가운데 87세의 덩은 1월 17일 기자 없이 기차로 베이징을 떠났다. 선전에서 그는 특구가 자본주의로 가는 길이라는 사람들은 「기본 상식」이 없다고 했고, 더 대담하게 실험하라며 “전족한 여자처럼 굴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The proportion of planning to market forces is not the essential difference between socialism and capitalism. A planned economy is not equivalent to socialism, because there is planning under capitalism too; a market economy is not capitalism, because there are markets under socialism too.
계획과 시장의 비중은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본질적 차이가 아니다. 계획경제가 곧 사회주의는 아니다. 자본주의에도 계획이 있기 때문이다. 시장경제가 곧 자본주의는 아니다. 사회주의에도 시장이 있기 때문이다.
주하이에서는 양상쿤·류화칭·양바이빙 등 군 지도자에게 개혁을 하지 않는 자는 물러나야 한다고 말했고, 장쩌민 모르게 열린 이 자리는 일종의 압박으로 받아들여졌다. 남순은 처음 중앙 언론에 무시되어 홍콩 언론이 먼저 보도했고, 3월 26일 《선전특구보》가 상세히 실었다. 군이 개혁을 「보가호항」하겠다고 선언하자 장쩌민 지도부가 돌아섰고, 10월 제14차 당대회가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목표로 정했다. 「발전이야말로 확고한 도리」 같은 말과 「고양이론」이 널리 퍼졌지만, 남순이 가속한 발전 모델은 연해와 내륙의 격차와 부패를 풀지 못했고 정치 개혁도 되살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