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ee-Hive · 1861–1878

비하이브

The Bee-Hive

1861년부터 1878년까지 런던에서 나온 노동조합 주간지. 1858년에 시작된 건축 노동자들의 투쟁을 지원하려고 조지 포터가 창간했고 런던 노동조합평의회의 공식 기관지가 되었다가 1865년 그 지위를 잃었다. 1864년 11월 국제노동자협회 창립 선언을 처음 실었고 인터내셔널의 문서와 총평의회 회의 보고를 싣는 기관지 노릇을 했으나, 1870년 총평의회는 마르크스의 제안으로 이 신문과의 관계를 끊었다.

상세

창간 편집자는 직업 언론인 조지 트루프였고, 로버트 하트웰이 주요 기고자, 협동조합 운동가 로이드 존스가 논설 필자였다. 신문은 파업을 지지하고 1860년대의 신형 노동조합을 옹호했다. 그러나 1862년 발행 부수는 2,700부에 그쳤고 포터는 827파운드의 빚을 졌다.

런던 노동조합평의회 지도부인 이른바 「준타」와 포터 지지자들은 격렬하게 다투었다. 로버트 애플가스는 포터를 「파업 제조업자」라고 비난했고, 포터와 조지 하월의 반목 때문에 이 신문의 지지자들은 개혁연맹 초기 회의에서 배제되었다. 1865년 애플가스가 노스스태퍼드셔 쟁의 보도를 조사해 포터의 부정과 부실 경영을 고발하자 신문은 평의회 기관지 지위를 잃었고 포터도 집행부 자리를 잃었다. 포터는 런던 노동자협회를 세워 이 신문을 그 기관지로 삼았고, 신문은 자유당 급진파를 지지했다.

판매가 부진해 파산 직전이던 신문은 1868년 6월 자유당 의원 새뮤얼 몰리와 대니얼 플랫이 주식을 사들여 살아났다. 1870년 편집을 맡은 헨리 솔리는 논조를 누그러뜨렸고, 1871년 포터가 돌아왔다. 1877년 『인더스트리얼 리뷰』로 이름을 바꾼 신문은 1878년 말 2,000파운드가 넘는 빚을 지고 파산했다.

1864년 11월부터 이 신문은 국제노동자협회의 공식 기관지 구실을 했지만, 편집진은 인터내셔널 문서의 게재를 미루거나 왜곡했고 총평의회 회의 보고를 제멋대로 다루었다. 아일랜드 문제에서 쇼비니즘적 입장을 취했고, 1870년 초에는 자유주의 사업가 몰리가 신문을 소유하게 되었다. 1870년 4월 26일 총평의회에서 마르크스는 이 신문이 협회의 결의를 묵살하고 보고를 훼손하고 늦추어 날짜까지 틀리게 했으며, 자본가와의 조화를 설교해 협회의 규약과 강령에 어긋나고, 아일랜드 강압법안에 대해 정부에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며 모든 관계를 끊자고 제안했다. 대륙에서는 아직 이 신문을 인터내셔널의 기관지로 여기고 있었으므로 그는 단절을 공개해야 한다고 보았고, 결의는 5월 초 채택되었다.

관련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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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1. 위키백과 (영문)
  2. 마르크스주의 인터넷 아카이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