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캅카스 민주연방공화국
Transcaucasian Democratic Federative Republic
1918년 4월 22일 트빌리시의 자캅카스 세임이 선포해 5월 28일까지 존속한 그루지야·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의 연방 국가. 오스만 제국의 침공 앞에서 독립국 자격으로 강화 협상을 하기 위해 세워졌으나, 세 민족 집단의 목표가 엇갈려 한 달여 만에 5월 26일 그루지야가, 28일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이 독립을 선언하며 해체되었다.
상세
10월 혁명 뒤 볼셰비키를 따르지 않기로 한 자캅카스는 1917년 11월 예브게니 게게치코리를 의장으로 하는 자캅카스 인민위원부를 세웠고, 1918년 2월 23일 트빌리시에 입법기관 세임을 열었다. 세임은 새 선거 없이 러시아 제헌의회 선거 결과를 쓰고 의석 문턱을 3분의 1로 낮춰 구성되었으며, 의장은 니콜라이 치헤이제였다. 그루지야 멘셰비키와 무사바트가 각 30석, 다슈나크가 27석을 차지했고 볼셰비키는 참여를 거부했다.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이 아르다한·바투미·카르스를 오스만에 넘기자 세임은 조약을 인정하지 않았으나, 트라브존 강화 회의에서 오스만 대표는 독립을 선언해야만 협상하겠다고 했다. 세임은 4월 14일 오스만에 전쟁을 선포했지만 같은 날 바투미가 함락되었고, 4월 22일 다비트 오니아시빌리의 발의로 독립 민주연방공화국을 선포하며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의 조건을 받아들이고 카르스를 내주었다. 오스만은 4월 28일 새 국가를 승인했다.
4월 26일 아카키 치헨켈리가 총리 겸 외무장관을 맡은 13명의 내각이 세임의 승인을 받았다. 그러나 5월 11일 바투미 회담에서 오스만 대표 할릴 베이는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을 더는 인정하지 않는다며 아할칼라키·아할치헤·수르말루와 알렉산드로폴·예레반·에치미아진의 상당 부분까지 요구했고, 5월 21일 아르메니아로 다시 진격했다. 아르메니아인이 오스만군과 싸우고 아제르바이잔인이 바쿠의 볼셰비키 문제에 매달린 사이 그루지야 지도부는 노이 조르다니아를 통해 독일에 지원을 구했다. 5월 26일 이라클리 체레텔리가 연방은 실패했다고 연설한 뒤 세임은 해산을 의결했고, 그루지야가 독립을 선포했다. 이틀 뒤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이 뒤따랐다. 역사가 리처드 호바니시안은 이 국가가 「독립적이지도, 민주적이지도, 연방적이지도, 공화국이지도 않았다」고 평했고, 세 나라는 뒤에 1922–1936년의 자캅카스 사회주의 연방 소비에트 공화국으로 강제로 다시 묶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