뵤셴스카야 봉기
Vyoshenskaya Uprising
1919년 3월 11일 돈강 상류의 뵤셴스카야 스타니차를 중심으로 베르흐네돈스코이 관구의 카자크가 붉은 군대 점령 당국에 맞서 일으킨 봉기. 1월 24일 러시아 공산당 중앙위원회 조직국이 결정한 탈카자크화 지령에 따른 처형과 징발이 직접적인 원인이었고, 봉기군은 “공산당 없는 소비에트”를 내걸었다. 파벨 쿠디노프가 이끈 약 3만 명의 봉기군은 남부전선의 병력을 묶어 두었고, 6월 초 돈 군이 돌파해 들어와 합류하면서 데니킨군의 북진에 길을 열었다.
상세
1918년 말 돈 군의 전선이 무너지자 돈강 상류의 카자크 연대 상당수는 붉은 군대와 화해하고 집으로 돌아갔고, 1919년 1~3월 이 지역은 남부전선 부대에 점령되었다. 1월 24일 조직국은 부유한 카자크에게 대량 테러를 가하고 소비에트 권력에 맞선 투쟁에 직간접으로 가담한 카자크 전부를 가차 없이 처벌하라는 비밀 회람을 결정했고, 회람에는 야코프 스베르들로프의 서명이 붙었다. 대량 탄압이 봉기를 부를 것을 걱정한 그리고리 소콜니코프의 반대에도 스베르들로프는 적대한 자를 모두 처형하자는 세르게이 시르초프의 손을 들어 주었다. 2월 9일에는 카자크에게 하루 안에 무기를 모두 내놓지 않으면 사형에 처한다는 명령이 내려졌고, 외지에서 온 혁명 재판소가 처형 명단을 만들어 봉기 직전까지 300명가량의 카자크가 총살되었다. 3월 11일 뵤셴스카야와 카잔스카야, 미굴린스카야, 옐란스카야 일대에서 봉기가 일어났고 쿠디노프가 지휘를 맡았다. 3월 16일 레닌이 참석한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는 남부전선 혁명군사위원이던 소콜니코프의 문제 제기에 따라 카자크 전체를 겨냥한 무자비한 테러를 멈추기로 결정했지만, 봉기는 이미 번진 뒤였다.
붉은 군대는 제8·제9군에서 1만 4천 명을 빼내 봉기를 누르려 했지만 제204 세르도프스크 연대가 통째로 봉기군 편으로 넘어갔고, 봉기군은 그만한 수의 붉은 군대를 묶어 두었다. 5월 하순 돈 군은 전선 전체에서 공세에 나서 밀레로보와 6월 1일 루간스크를 차지했고, 알렉산드르 세크레툐프의 기병 집단이 붉은 군대 방어선을 뚫고 카잔스카야에서 봉기군과 연결되었다. 봉기는 6월 8일 끝난 것으로 보며, 6월 말까지 돈 지방에서 붉은 군대가 밀려나 데니킨의 모스크바 진격이 시작되었다. 미하일 숄로호프는 『고요한 돈강』 제3권에서 이 봉기를 중심 사건으로 그렸다. 1월 지령을 누가 썼는지, 실제로 어디까지 집행되었는지, 그리고 탈카자크화를 제노사이드로 볼 것인지는 역사가들 사이에서 논쟁거리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