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national Wages for Housework Campaign · 1972–현재

가사노동 임금 운동

Wages for Housework

가사와 돌봄을 임금 없는 노동으로 규정하고 그에 대한 임금을 요구한 국제 페미니스트 운동. 1972년 마리아로사 달라 코스타, 실비아 페데리치, 브리지트 갈티에, 셀마 제임스가 시작했고, 같은 해 파도바에서 결성된 국제 페미니스트 집단에서 국제 가사노동 임금 운동(IWFHC)이 생겨났다. 달라 코스타와 제임스의 『여성의 힘과 공동체의 전복』(1972)이 가사노동 논쟁을 열었고, 페데리치의 『가사노동에 반대하는 임금』(1975)은 임금 요구를 돈 자체가 아니라 정치적 관점으로 내세웠다.

상세

국제 가사노동 임금 운동은 1972년 마리아로사 달라 코스타, 실비아 페데리치, 브리지트 갈티에, 셀마 제임스가 시작했고, 이들이 가사노동에 대한 임금 요구를 처음 내세웠다. 달라 코스타는 1972년 파도바에서 가사노동을 둘러싼 정치적 논쟁과 행동을 위해 결성된 국제 페미니스트 집단의 공동 창립자였고, 이 집단에서 국제 운동이 생겨났다. 운동은 이탈리아의 자율주의 마르크스주의라는 더 큰 흐름에서 나왔고, 달라 코스타는 이 분석을 이탈리아 노동자주의에 대한 내재적 비판으로 발전시켰다.

이론적 출발점은 달라 코스타와 제임스가 함께 쓴 『여성의 힘과 공동체의 전복』(폴링월 프레스, 1972)이다. 이 책은 가사노동을 자본의 작동에 필요하지만 임금 관계에서 빠져 있어 보이지 않게 된 재생산 노동으로 다시 정의해 「가사노동 논쟁」을 열었다. 다만 초판은 가사노동 임금을 요구하지 않았고 1975년 제3판에서 그 요구를 내걸었다. 가사노동 임금은 제임스가 맨체스터의 제3차 전국 여성 해방 회의에 낸 「여성, 노동조합, 노동, 또는 하지 말아야 할 일」의 여섯 요구 중 하나였고, 그 뒤 제임스는 런던과 브리스틀에서 여성의 힘 집단을 꾸려 이 요구를 내걸었으며, 집단은 1975년 가사노동 임금 운동으로 재편되었다. 이탈리아에서는 1974년 여러 도시에 「가사노동에 임금을(Salario al Lavoro Domestico)」을 내건 집단이 생겼고, 파도바에서는 달라 코스타와 페데리치가 만든 로타 페미니스타가 이 구상을 받아들였다.

페데리치는 1975년 뉴욕에서 가사노동 임금 위원회를 시작하고 같은 해 여성의 힘 집단과 폴링월 프레스에서 『가사노동에 반대하는 임금』을 냈다. 이 글은 「그들은 그것을 사랑이라 부른다. 우리는 그것을 임금 없는 노동이라 부른다」로 시작한다. 페데리치는 자본이 가사를 자연스럽고 피할 수 없으며 보람 있는 활동으로 믿게 해 무급 노동을 받아들이게 했고, 바로 그 무급 상태가 가사는 노동이 아니라는 통념을 굳혀 여성이 그에 맞서 싸우지 못하게 했다고 보았다. 그래서 가사노동 임금을 「한 덩어리의 돈」이 아니라 정치적 관점으로 보아야 한다고 했다.

1974~1976년 운동 안에서 영국·미국·캐나다에 임금을 요구하는 레즈비언들, 영국 성노동자 집단, 마거릿 프레스코드와 윌메트 브라운이 공동 창립한 가사노동 임금을 위한 흑인 여성들이라는 자율 조직이 생겼다. 1977년 페데리치가 만든 뉴욕 그룹이 해산했고, 달라 코스타가 이끈 파도바 그룹도 국제 운동을 떠나 곧 해산했는데, 달라 코스타는 1970년대 말 이탈리아의 정치적 탄압을 그 원인으로 들었다. 운동은 1980~90년대 유엔 여성 회의에서 무급 돌봄 노동을 인정하는 결의를 끌어냈고, 2000년 3월 8일 이후로는 세계 여성 파업으로 더 널리 알려졌다. 2019년에는 유럽 그린 뉴딜 보고서에 사람과 도시 환경, 자연에 대한 돌봄을 보상하는 「돌봄 소득」 권고를 넣었다.

운동은 안팎에서 논쟁을 불렀다. 하이디 하트먼은 1979년 달라 코스타의 가사노동 분석이 남녀 관계가 아니라 가사노동과 자본의 관계에 관한 논증이라고 비판하면서도, 그녀의 임금 요구가 여성 운동 안에서 가사노동의 중요성에 대한 의식을 크게 높였다고 인정했다. 다른 비판자들은 가사노동 임금이 가사를 둘러싼 성 역할을 굳히거나 제도화할 수 있으므로 가사로부터의 해방, 유급 노동에서의 기회와 동일 임금, 가사의 평등한 분담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했고, 사랑과 돌봄의 친밀한 관계를 상품화한다는 우려도 나왔다. 지지자들은 노동시장 진입만으로는 여성의 사회적 역할이 바뀌지 않고 유급 노동에 들어간 여성이 「이중 교대」를 겪는다고 반박했다. 운동이 남긴 개념적 바탕은 재생산 노동과 사회적 재생산 이론에서 이어진다.

관련 인물

출처

  1. 위키백과 (영문)
  2. 위키백과 (영문)
  3. caringlabor.wordpress.com
  4. web.ics.purdue.e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