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번과 마녀』에서 마녀사냥과 시초 축적을 엮어 자본주의의 탄생을 다시 쓴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스트
2004년 『캘리번과 마녀』에서 근대 초 유럽의 마녀사냥을 자본주의 시초 축적의 한 축으로 읽어, 여성의 몸과 무급 재생산 노동을 빼앗는 일이 임금 노동 경제가 서는 역사적 전제였다고 주장했다.
1942년 파시즘 치하의 파르마에서 태어난 이탈리아 출신 미국의 학자·활동가. 볼로냐 대학을 나와 1967년 풀브라이트 장학금으로 미국에 건너갔고, 1980년 버펄로 대학에서 루카치 죄르지 연구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72년 마리아로사 달라 코스타, 셀마 제임스와 국제 페미니스트 집단을 세워 가사노동 임금 운동을 시작했고, 1975년 소책자 「가사노동에 반대하는 임금」을 냈다. 1984~1986년 나이지리아 포트하커트 대학에서, 1987년부터 2005년까지 뉴욕 호프스트라 대학에서 정치철학과 국제학을 가르쳤다. 1990년 아프리카 학문 자유 위원회를 함께 세웠다. 2004년 『캘리번과 마녀』를 냈고, 공유재(커먼즈)의 역사와 이론을 다룬 이론가로도 꼽힌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 1965볼로냐 대학 현대 언어·문학 학사
- 1967풀브라이트 장학금으로 미국 버펄로 대학 유학
- 1972달라 코스타·제임스와 국제 페미니스트 집단 창립
- 1975「가사노동에 반대하는 임금」 간행, 뉴욕 가사노동 임금 위원회 창립
- 1980루카치 리얼리즘 연구로 버펄로 대학 철학 박사
- 1984–1986나이지리아 포트하커트 대학 강의
- 1987–2005호프스트라 대학 정치철학·국제학 교수
- 1990아프리카 학문 자유 위원회 공동 창립
- 2004『캘리번과 마녀』 간행
- 2012『혁명의 영점』 간행
「가사노동에 반대하는 임금」은 무엇을 요구했나
페데리치는 1967년 미국으로 건너가 버펄로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하던 중 가사노동 임금 운동에 뛰어들었다. 1972년 마리아로사 달라 코스타, 셀마 제임스와 함께 국제 페미니스트 집단을 세웠고, 이 조직이 가사노동 임금 운동을 시작했다. 1973년부터 미국 곳곳에 가사노동 임금 집단을 만드는 일을 도왔고, 1975년 뉴욕에 「가사노동 임금 위원회」를 세워 브루클린에 사무실을 열었다. 위원회의 전단은 결혼 여부, 국적, 성적 지향, 자녀 수, 취업 여부와 상관없이 모든 여성에게 함께하자고 불렀다.
1975년 그는 운동을 대표하는 글이 된 8쪽짜리 소책자 「가사노동에 반대하는 임금」을 냈다. 제목이 「가사노동을 위한 임금」이 아니라 「가사노동에 반대하는 임금」인 데 핵심이 있다. 그에 따르면 가사노동은 여성에게 일이 아니라 가족을 향한 사랑의 행위로 제시된다. 보수도 인정도 없으니 여성은 다른 활동을 할 자유가 적고, 남편에게 기대야 하며, 스스로를 노동자로 여기지 못해 더 나은 조건을 위해 조직하지도 못한다. 임금을 요구하는 것은 이 일이 여성의 타고난 본성이 아니라 노동이라는 사실을 드러내는 정치 전략이었다.
그래서 그는 가사노동 임금 요구가 단지 보수를 받거나 여성의 경제적 독립을 얻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것은 보이지 않던 노동을 보이게 하고, 자본주의가 주로 여성의 무급 노동에 기대고 있다는 구조를 흔들며, 자본이 여성에게 지어 준 「주부」라는 역할을 뒤엎는 혁명 전략이라는 것이다. 남성과의 관계를 끊거나 일터에 나가 남성과 같은 임금을 위해 싸우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며, 재생산 노동이 자본주의적으로 짜여 있는 한 여성은 착취당하지 않고 사회에 참여할 수 없다고 보았다. 이 무렵 글은 2012년 『혁명의 영점』으로 묶였다. 뉴욕 집단은 1977년 해산했다.
『캘리번과 마녀』는 왜 마녀사냥을 자본주의의 탄생과 엮었나
『캘리번과 마녀: 여성, 신체 그리고 시초축적』(2004)은 페데리치가 1980년대 나이지리아에서 가르친 경험과 가사노동 임금 운동의 문제의식이 만난 책이다. 출발점은 마르크스의 「시초 축적」 개념이다. 자본주의가 돌아가려면 한쪽에는 돈과 생산수단을 쥔 자본가가, 다른 쪽에는 노동력 말고는 팔 것이 없는 노동자가 있어야 한다. 마르크스는 농민을 땅에서 쫓아낸 인클로저(공유지에 울타리를 치는 일)처럼, 이 출발 조건을 폭력으로 만들어 낸 역사적 과정을 시초 축적이라 불렀다. 흔히 이것은 자본주의 이전에 한 번 일어나고 끝난 전 단계로 이해된다.
페데리치는 이 통념에 반대한다. 시초 축적은 자본주의의 근본 특징이어서, 체제가 스스로를 이어 가려면 빼앗은 자본을 계속 들여와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이 수탈을 여성의 무급 노동, 특히 재생산 노동과 이었다. 16~17세기 유럽의 이단 재판과 마녀사냥, 그리고 강간과 매춘의 제도화는 여성을 체계적으로 억누르고 그 노동을 빼앗은 과정의 한가운데 있었다. 이 책은 이탈리아 학자 레오폴디나 포르투나티의 작업을 이었는데, 두 사람은 1984년 『위대한 캘리번』을 함께 쓴 바 있다.
그는 이 이야기를 식민지 수탈과 함께 읽는다. 여성의 종속, 대서양 노예무역, 아메리카 식민화는 같은 과정의 이어진 부분이라는 것이다. 또 자본주의의 등장을 봉건제를 깨뜨린 해방이 아니라, 커져 가던 공동체주의의 흐름을 꺾으려는 반동으로 해석한다. 같은 눈으로 보면 국제통화기금과 세계은행 같은 기구는 물, 종자, 유전 정보까지 함께 쓰던 모든 것을 사유화하는 새로운 인클로저, 곧 새로운 시초 축적을 벌이고 있다. 그래서 그는 공유재(커먼즈)를 지키고 되찾는 투쟁을 역사의 중심에 두며, 이 책은 「여성을 이야기의 중심에 둔 자본주의 탄생기」로 평가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