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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유재 (커먼즈)

Commons

국가도 시장도 아닌, 그것을 쓰는 공동체가 스스로 규칙을 정해 함께 관리하는 자원과 그 관리 방식. 영어 커먼즈(commons)는 본래 마을 사람들이 함께 쓰던 공유지를 가리키는 영국 법률 용어로, 인클로저로 이 땅들이 사유지가 되는 과정이 자본주의 형성의 한 축이었다. 1968년 개릿 하딘의 「공유지의 비극」이 공유재는 남용으로 망한다고 주장하자, 엘리너 오스트롬은 공동체의 자치 제도가 공유재를 오래 지켜 온 사례로 반박했다. 마르크스주의와 페미니즘 쪽에서는 실비아 페데리치, 피터 라인보우, 데이비드 하비 등이 공유재를 인클로저와 사유화에 맞서는 사회관계이자 투쟁의 장으로 다시 읽었다.

상세

공유재란 무엇이고, 왜 이름이 여럿인가?

공유재(커먼즈)는 한 사회의 구성원 모두가 쓸 수 있는 자연적·문화적 자원, 예컨대 공기와 물과 살 만한 지구를 가리키기도 하고, 사람들의 무리(공동체, 이용자 집단)가 개인과 집단의 이익을 위해 함께 관리하는 자원을 가리키기도 한다. 요즘 연구에서 더 중요한 것은 뒤의 뜻이다. 공유재는 국가나 시장이 아니라, 자원을 쓰는 이들의 공동체가 스스로 만든 제도로 자원을 다스리는 사회적 실천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공유재는 아무나 마음대로 쓰는 ‘개방 접근’ 자원과 다르다. 공유재에는 정해진 이용자들이 있고, 그들이 접근과 이용의 규칙을 정한다.

영어 commons는 본래 마을 사람들이 함께 쓰던 땅, 곧 공유지를 가리키는 영국의 전통 법률 용어였다. 유럽 지성사에서 이 말은 수백 년에 걸쳐 울타리가 쳐지고 사유재산이 된 공동 경작지, 목초지, 숲을 가리켰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로마법은 모두가 쓰고 누리는 ‘공동의 것’(res communis)과 정부가 관리하는 ‘공공의 것’(res publica)을 구별했다. 공유재를 공공재나 국유재산과 같은 것으로 보면 안 되는 까닭이 여기 있다.

우리말 번역어는 아직 하나로 굳지 않았다. 땅을 가리킬 때는 ‘공유지’, 자원을 가리킬 때는 ‘공유재’나 ‘공유자원’이라고 하고, 경제학의 common-pool resources는 흔히 ‘공유자원’으로 옮긴다. 엘리너 오스트롬의 책 국내 번역본도 부제를 ‘공유자원관리를 위한 제도의 진화’로 달았다. 사회운동과 인문학 쪽에서는 영어를 그대로 읽은 ‘커먼즈’가 널리 쓰인다. 실비아 페데리치의 『세계와 다시 노래하기』 국내 번역본은 부제를 ‘페미니즘과 공통장의 정치’로 달아 ‘공통장’(共通場)이라는 말을 쓰고, 마이클 하트와 안토니오 네그리의 Commonwealth는 『공통체』로 옮겨졌다. 이 사전은 경제학과 운동 양쪽에서 두루 통하는 ‘공유재’를 표제어로 삼고 ‘커먼즈’를 함께 적는다. 한편 이탈리아어 bene comune(공동선)는 사회 전체의 이익이라는 윤리·정치철학의 개념으로, 공유재를 뜻하는 beni comuni와는 다르다.

인클로저는 공유지에서 무엇을 빼앗았나?

공유재가 마르크스주의의 관심사가 된 것은 무엇보다 그것을 잃는 과정 때문이다. 카를 마르크스는 『자본』 1권의 본원적 축적 서술에서 15세기 영국의 농업 임금노동자들도 본래의 농민들과 함께 공유지를 쓸 권리를 누렸다고 적었다. 그 땅에서 가축을 치고 땔감과 나무와 토탄을 얻었다는 것이다. 이 공유지가 양 목장과 사유지로 바뀌는 과정, 곧 인클로저에서 마르크스가 특히 주목한 것은 18세기의 변화였다. 그때까지 개인의 폭력으로 이루어지던 일을 이제 의회가 법으로 밀어붙인 것이다. 그는 이렇게 썼다. “18세기의 진보는, 법 자체가 이제 인민의 땅을 약탈하는 수단이 된다는 데서 드러난다.” 인클로저의 전체 과정과 그것이 임금노동자 계급을 만든 방식은 본원적 축적 항목에서 다룬다.

마르크스가 공유재 문제를 처음 만난 것은 『자본』보다 25년 앞선 1842년이다. 그는 《라인 신문》에 다섯 차례에 걸쳐 「목재 절도법에 관한 토론」을 실어, 라인 주의회가 숲에서 떨어진 마른 나뭇가지를 줍는 일까지 목재 절도로 처벌하려는 법안을 비판했다. 그는 산 나무를 베는 일과 이미 나무에서 떨어진 가지를 줍는 일은 전혀 다른 행위인데도, 의회가 숲 주인의 이익을 위해 둘을 똑같이 ‘절도’로 묶었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 편에 서서 “어느 한 지역의 것이 아니라 모든 나라에 있는 빈민의 관습법”을 요구했다. 숲에서 땔감을 줍는 관습적 권리가 사유재산의 논리로 범죄가 되는 과정은, 훗날 공유재론이 ‘새로운 인클로저’라고 부르는 일의 원형이다.

‘공유지의 비극’은 무엇을 주장했나?

‘공유재’라는 말이 학문의 중심 용어가 된 계기는 생태학자 개릿 하딘이 1968년 학술지 《사이언스》에 실은 글 「공유지의 비극」이다. 오스트롬과 동료들에 따르면 이 글이 나오기 전에는 학술 문헌에서 공유재나 공유자원이라는 말이 들어간 제목이 매우 드물었다. 하딘은 1833년 영국 경제학자 윌리엄 포스터 로이드의 소책자에서 예를 빌려 왔다. 누구나 소를 풀어 놓을 수 있는 목초지에서는 소를 한 마리 더 풀 때의 이익은 목동 혼자 갖지만 풀밭이 망가지는 손해는 모두가 나눠 지므로, 모두가 합리적으로 행동할수록 목초지는 망가진다는 것이다. 하딘의 결론은 이랬다. “공유지에서의 자유는 모두를 파멸로 이끈다.”

이 글의 주된 관심사는 사실 목초지가 아니라 인구 과잉이었다. 하딘은 모든 가정이 자녀 수를 스스로 정할 권리를 버리고 이를 “서로 합의한 상호 강제”로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같은 근거로 부유한 나라는 가난한 나라에 대한 원조와 그곳에서 오는 이민을 끊어야 한다는 ‘구명보트 윤리’를 폈다. 인구에 관한 그의 견해는 단순한 우생학이자 인종주의라는 비판을 받는다. 공유재 문제의 해법으로 그가 내놓은 것은 사적 소유 아니면 국가의 강제였다. 하딘의 ‘공유재’ 개념이 자주 오해되자, 그는 나중에 글 제목을 「규제되지 않은 공유지의 비극」으로 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역사가들은 공유지를 어떻게 다시 보았나?

하딘의 비유에는 역사적 사실과 다른 점이 있다. 영국의 공유지는 누구에게나 열린 땅이 아니었다. 모든 공유지에는 법적 소유자인 장원 영주가 있었고, 그 땅에서 가축을 칠 권리는 ‘공유권자’(commoner)라 불리는 정해진 주민들에게만 있었다. 이들의 방목권은 바로 과도한 방목을 막기 위해 법으로 제한되었고, 장원마다 있던 장원 법정이 관습법을 어긴 공유권자와 영주에게 벌금을 물렸다. 법학자 크리스토퍼 로저스는 하딘의 명제가 잉글랜드와 웨일스의 공유지에는 전혀 들어맞지 않으며 잘못된 전제 위에 서 있다고 했다. 수잔 J. 벅 콕스는 공유지의 역사를 오히려 수백 년 동안 성공적으로 공동 이용된 ‘공유지의 승리’로 보았다. 로이드의 소책자 자체가 인클로저가 공유지 제도를 거의 없앤 뒤에 쓰였다는 점도 지적된다.

마르크스주의 역사가 피터 라인보우는 이 공유지의 역사를 계급투쟁의 역사로 다시 썼다. E. P. 톰슨의 제자인 그는 2008년 『마그나카르타 선언』(원제 ‘마그나카르타 선언: 모두를 위한 자유와 공유재’)에서 1215년 대헌장과 함께, 거의 알려지지 않은 짝 문서인 「삼림헌장」을 함께 읽었다. 가난한 사람들이 숲에서 생계를 꾸릴 권리를 지키려고 만들어진 헌장이다. 페데리치는 이 책에서 공유재가 계급투쟁의 역사를 오늘날까지 이어 온 실이었음을 배웠다고 썼다. 라인보우가 마커스 레디커와 함께 쓴 『히드라』는 선원, 노예, 공유권자들이 대서양을 가로질러 벌인 저항의 숨은 역사를 다룬다.

오스트롬은 무엇을 반박했나?

정치학자 엘리너 오스트롬은 1990년 『공유재의 관리: 집단행동을 위한 제도의 진화』(국내 번역 『공유의 비극을 넘어』)에서 하딘에게 현장 연구로 답했다. 그는 스페인과 필리핀의 관개 시설, 스위스와 일본의 산골 마을, 캐나다 노바스코샤와 인도네시아의 어장을 살폈다. 결론은 공유재를 쓰는 사람들이 사유화나 중앙 국가의 통제에만 기대지 않고도 오래가는 규칙을 스스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스위스 알프스의 한 공유 목초지는 농민들 스스로 꾸리는 조직이 1517년부터 이어 왔다.

오스트롬은 오래 살아남은 공유재 제도에서 되풀이되는 원칙을 뽑았다. 경계가 분명할 것, 가져가고 보태는 규칙이 지역 사정에 맞을 것, 이용자들이 규칙을 함께 정할 것, 감시할 것, 어긴 정도에 따라 제재를 점점 무겁게 할 것, 갈등을 풀 장치가 있을 것, 스스로 조직할 권리를 바깥 권력이 최소한 인정할 것, 큰 체계 안에서는 여러 층의 조직이 겹쳐 있을 것이다. 그는 어떤 문제든 한 가지 처방으로 풀 수 있다는 생각을 ‘만병통치약’이라 부르며 경계했고, 지구 차원의 단일 기구보다 결정이 현장과 당사자 가까이에서 내려지는 다중심적 접근을 권했다.

오스트롬은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었다. 그의 작업은 신제도주의 경제학과 공공선택론의 한 갈래로 분류된다. 2009년 그는 경제 거버넌스, 특히 공유재에 대한 분석으로 올리버 윌리엄슨과 함께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고, 이 상을 받은 첫 여성이 되었다. 2008년 금융 위기 직후라 이 수상을 자유시장의 비효율에 대한 적절한 응답으로 보는 이들도 있었다. 오스트롬의 관심은 공유재 제도가 오래 작동하는 조건을 밝히는 데 있었고, 공유재를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정치적 기획으로 내세우지는 않았다. 바로 이 점에서 마르크스주의 공유재론과 갈린다. 공유재 연구 안에서도 공유재를 자본주의의 대안으로 볼 것인가, 자본주의에 흡수되는 현실을 인정할 것인가 하는 긴장이 되풀이해 나타난다.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은 공유재를 어떻게 읽었나?

실비아 페데리치는 가사노동 임금 운동과 『캘리번과 마녀』(2004)의 문제의식을 공유재론으로 이었다. 그는 「페미니즘과 공유재의 정치」에서 1993년 마지막 날 사파티스타가 멕시코 공동 토지(에히도) 해체에 항의해 산크리스토발데라스카사스의 광장을 점거한 뒤로 공유재 개념이 운동의 중심으로 들어왔다고 보았다. 국가 중심 혁명 모델의 몰락, 그리고 ‘옛 인클로저와 새 인클로저’에 맞선 싸움이 사라진 줄 알았던 공동의 소유와 관계를 다시 보이게 했다는 것이다.

그는 먼저 두 가지를 경계했다. 첫째, 1990년대 초부터 세계은행 같은 기구가 공유재의 언어를 가져다 사유화에 썼다. 생물 다양성과 ‘지구적 공유재’를 지킨다며 열대림을 생태 보호구역으로 바꾸고, 수백 년 그 숲에 기대 살던 사람들을 내쫓은 뒤 돈을 내는 사람에게만 문을 열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위기에 빠진 자본가 계급이 ‘지구 환경의 수호자’로 행세하며 되살아나도록 공유재 담론을 짜서는 안 된다고 했다. 둘째, 여기저기서 지키고 일구는 공유재들을 어떻게 묶어 새로운 생산양식의 토대로 만들지에 대한 물음이 아직 풀리지 않았다.

여기서 페미니즘의 관점이 중요해진다. 페데리치에 따르면 여성은 예나 지금이나 재생산 노동의 주된 주체로서 공동의 자연 자원에 남성보다 더 많이 기대 왔고, 그래서 그 사유화로 가장 큰 피해를 입었으며 그것을 지키는 데 가장 앞장섰다. 자본주의 발전의 첫 단계에 여성은 잉글랜드와 ‘신대륙’에서 인클로저에 맞선 투쟁의 맨 앞에 섰고, 오늘날에도 아프리카 도시의 빈 공유지에 옥수수와 카사바를 심고, 숲을 다시 가꾸고, 물 사유화에 맞선 반란을 이끈다. 서아프리카의 계모임 ‘톤틴’ 같은 여성들의 자치 신용 조직을 그는 ‘돈의 공유재’라 부르며, 서로를 감시하고 망신 주는 방식으로 돌아가는 세계은행식 소액 금융과 대비했다. 1980년대 칠레와 페루의 여성들이 물가 폭등 속에 함께 차린 공동 부엌도 그 예다.

페데리치가 끌어낸 교훈은 이렇다. 재생산의 물질적 수단을 함께 나누는 일, 곧 ‘커머닝’이 공동의 이익과 서로의 유대를 만드는 첫째 장치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집안일을 공동화하는 일을 정치 의제에 넣자고 했다. 19세기 미국의 ‘유물론적 페미니스트’들이 공동 부엌과 협동 가구로 가사노동을 사회화하려 한 전통을 되살리자는 것이다. 이것이 가사노동을 여성의 천직으로 굳히자는 말은 아니라고 그는 못박았다. 재생산 노동을 둘러싸고 여성들이 쌓아 온 집단적 경험과 지식과 투쟁을 지우지 말자는 것이다. 그가 즐겨 인용한 구호는 “공동체 없이는 공유재도 없다”이다. 다만 여기서 공동체는 종교나 민족으로 묶인 닫힌 집단이 아니라 서로에게, 그리고 땅과 숲과 바다와 동물에게 책임지는 관계의 질을 뜻한다.

하비와 네그리·하트는 공유재를 어떻게 정치화했나?

마르크스주의 지리학자 데이비드 하비도 하딘을 비판했다. 그는 하딘의 비유에서 왜 소를 개인이 소유한다는 점은 보지 않고 목초지가 공유라는 점만 문제 삼느냐고 물었다. 또 북아메리카 원주민의 수탈이 원주민이 ‘가치를 생산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정당화되었음을 상기시켰다. 하비는 『반란의 도시』(2012)에서 공공 공간과 도시 공유재를 구별했다. 공공 공간이 저절로 공유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이 정치적으로 행동할 때 공유재가 된다는 것이다. 아테네의 신타그마 광장,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 바르셀로나의 카탈루냐 광장이 그런 예다. 하비 같은 이들이 ‘커머닝’이라는 동사를 쓰는 것은 공유재를 어떤 특정한 물건이 아니라 과정이자 실천으로 보려는 것이다. 하비가 말한 ‘강탈에 의한 축적’, 곧 사유화와 금융화를 통한 오늘날의 수탈은 본원적 축적 항목에서 다룬다.

오페라이스모에서 나온 안토니오 네그리와 마이클 하트는 3부작의 마지막 권 『공통체』(2009)에서 ‘공통적인 것’(the common)의 재전유를 내세웠다. 이탈리아어판의 제목은 『공통적인 것: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 너머』였다. 자본주의의 사적 소유도, 사회주의의 국가 소유도 아닌 제3의 길로서 공통적인 것을 정치의 중심에 둔 것이다. 이들은 오늘날 생산의 주도권이 지적·비물질적 노동으로 넘어갔다고 보았고, 그래서 공통적인 것에는 자연 자원만이 아니라 사람들이 함께 만들어 내는 지적·비물질적 부까지 들어간다. 위키백과나 자유 소프트웨어 같은 디지털 공유재, 그리고 공유지 기반 동료 생산이나 디지털 코뮤니즘 같은 논의도 이 흐름과 맞닿아 있다.

이탈리아의 공유재 운동은 무엇을 남겼나?

공유재는 이탈리아에서 법과 선거의 쟁점이 되었다. 2007년 법무부가 꾸린, 법학자 스테파노 로도타가 이끈 위원회는 1942년 이래 손대지 않은 민법의 공공재산 규정을 고치는 법안을 마련하면서 ‘공유재’(beni comuni)라는 새로운 범주를 제안했다. 공유재는 엄밀한 뜻의 공공재산이 아니며, 공공기관만이 아니라 사인도 가질 수 있지만 그 권리가 널리 흩어져 있다는 것이다. 강과 호수와 그 밖의 물, 공기, 공원과 숲, 고산 지대와 빙하, 보호구역으로 지정된 해안, 야생 동식물이 여기에 들어간다. 정부가 무너지면서 이 법안은 의회에서 논의되지 못했지만, 2011년 대법원 연합부 판결은 소유 명의와 상관없이 공동체의 이익과 사회국가의 실현에 이바지하는 재산을 공유재로 보아야 한다고 판시했다.

같은 2011년 이탈리아 국민투표에서는 ‘물은 공유재’ 운동이 지역 공공서비스의 민영화와 물값에 투자 자본 수익을 얹는 규정을 없애는 안건을 올렸고, 투표율이 과반 정족수를 넘겨(약 54.8퍼센트) 통과되었다. 이 운동은 이탈리아 물 운동 포럼이 주도하고 급진좌파와 환경 정당들이 밖에서 지지했다.

입장에 따라 무엇이 갈리나?

공유재를 둘러싼 입장은 크게 셋으로 나눌 수 있다. 하딘의 입장에서 공유재는 내버려 두면 남용으로 무너지는 자원이고, 해법은 사유화나 국가의 강제다. 오스트롬의 입장에서 공유재는 이용자 공동체가 알맞은 제도를 만들면 시장과 국가 없이도 오래 지킬 수 있는 자원이고, 연구의 과제는 그 제도의 조건을 밝히는 것이다. 다만 이 입장은 공유재를 시장경제를 보완하는 제도로 보며, 자본주의 자체를 문제 삼지는 않는다. 페데리치, 라인보우, 하비, 네그리·하트 같은 마르크스주의·페미니즘 쪽에서 공유재는 자본의 인클로저와 사유화에 맞서 사람들이 함께 재생산을 꾸리는 사회관계이자 투쟁의 장이고, 그 목표는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새로운 생산양식의 토대다.

어느 입장인지 가늠하려면 이렇게 물어보면 된다. 공유재를 물건(자원)으로 보는가, 사람들의 관계와 활동(커머닝)으로 보는가? 접근과 이용의 규칙은 누가 정하는가? 소유자인가, 국가인가, 이용자 공동체인가? 공유재는 시장과 국가를 보완하는가, 그 바깥의 대안인가? 그리고 재생산 노동, 곧 먹이고 돌보고 기르는 일을 공유재의 문제에 넣는가? 정치적 귀결도 다르다. 하딘의 틀은 민영화와 인구 통제를 정당화하는 데 쓰였다는 비판을 받았고, 오스트롬의 틀은 지역 자치와 제도 설계 정책으로 이어졌으며, 마르크스주의·페미니즘의 틀은 토지 점거, 물 민영화 반대, 공동 부엌과 돌봄의 공동화 같은 운동으로 이어진다. 페데리치가 경고했듯, 자본이 공유재의 언어를 빌려 스스로를 되살리는 일을 경계해야 한다는 점도 이 논쟁의 한 축이다.

관련 인물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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