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창 봉기
Wuchang Uprising
1911년 10월 10일 후베이성 우창에서 혁명파가 조직한 신군 부대가 일으킨 무장 봉기. 이튿날 아침 우창을 장악하고 후베이 군정부를 세워 리위안훙을 도독으로 추대했으며, 12일 한커우·한양까지 차지했다. 각 성의 독립 선언으로 번져 청 왕조를 무너뜨린 신해혁명의 시작이 되었고, 10월 10일은 중화민국의 국경일이다.
상세
배경: 1911년 쓰촨의 보로 운동을 진압하려고 후베이 신군 일부가 쓰촨으로 옮겨 가자 우한의 방비가 얇아졌다. 신군 안에는 문학사와 공진회라는 두 혁명 단체가 뿌리를 내리고 있었고, 9월 24일 신군 각 부대 대표 60명과 함께 장이우를 총사령, 쑨우를 참모장으로 하는 봉기 지휘부를 세웠다. 처음 정한 10월 6일 거사는 준비 부족으로 미뤄졌다.
발발: 10월 9일 한커우 러시아 조계에서 쑨우가 만들던 폭탄이 터져 명단이 청 당국에 넘어갔고 후광 총독 루이청이 검거에 나섰다. 10일 저녁 공병대의 슝빙쿤 등이 먼저 일어났고 우자오린이 이끈 부대가 총독 관저를 공격했다. 루이청이 달아나자 11일 아침 우창이 혁명군 손에 들어왔고, 이 과정에서 500명이 넘는 만주족 병사가 죽었다고 기록된다.
결과: 지휘를 맡길 명망가가 없던 혁명파는 신군 협통 리위안훙을 끌어내 도독으로 앉혔다. 혁명군은 외국이 개입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고 18성기(十八星旗)를 내걸어 다른 성의 호응을 호소했다. 이어진 양샤 전투에서 한커우와 한양은 북양군에 다시 빼앗겼지만 41일 동안의 저항 사이 13개 성이 독립을 선언했다. 쑨원은 미국에서 이 소식을 신문으로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