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山艦事件 · 1926.03.20

중산함 사건

Zhongshan Warship incident

1926년 3월 20일 장제스가 광저우에 계엄을 펴고 공산당원 해군국 대리국장 리즈룽과 국민혁명군·황푸의 공산당원 정치위원들을 체포한 사건. 군함 중산함의 수상한 이동이 계기였다. 공산당과 소련 고문단의 국민당 내 영향력을 꺾고 장제스가 북벌 직전 당과 군의 실권을 쥐게 한 사건으로, 진상은 지금도 다투어진다.

상세

중산함은 쑨원을 기려 이름을 바꾼 국민당 해군 최강의 함정이었다. 3월 18일 밤 함정은 광저우에서 황푸 앞바다로 움직였다가 이튿날 돌아왔다. 장제스는 자신이 내린 적 없는 명령을 들먹이는 함장과 잇단 수상한 전화에 의심을 키웠고, 산터우로 피할 배표까지 샀다가 맞서기로 했다. 20일 그는 계엄을 선포하고 전화망을 끊은 뒤 함정을 장악했으며, 황푸 생도와 국민당 군대로 제1군과 황푸의 공산당원(저우언라이 포함)을 구금하고 왕징웨이와 소련 고문들의 숙소, 성항 파업위원회를 포위했다. 노동자 규찰대도 무장해제되었다.

해석은 셋으로 갈린다. 장제스가 왕징웨이와 공산당을 몰아내려 꾸민 선제 정변이라는 설, 공산당 일각이 장제스를 납치해 블라디보스토크로 보내려 했다는 설, 오해와 전화 혼선과 하급 간부의 경쟁이 겹친 우발 사건이라는 설이다. 공산당은 음모를 부인하며 사건을 왕징웨이를 군과 군관학교에서 떼어 내려는 장제스의 행동으로 보았고, 당시 광저우의 소련 대표단장 부브노프는 일부 공산당 지휘관의 섣부른 음모 시도를 원인으로 보고했다.

결과는 분명했다. 장제스와 부브노프는 소련 원조를 계속하고 소련 고문 키산카를 소환하며 공산당원이 최고 직책을 맡지 않는다는 데 합의했고, 장제스는 우파 우톄청을 해임해 균형을 잡았다. 왕징웨이는 프랑스로 떠났다. 1926년 5월의 「정리당무안」은 공산당원이 각급 당 위원회의 3분의 1을 넘지 못하고 중앙 부장을 맡지 못하게 했고, 같은 회의가 장제스의 당·군 지도권을 공식화했다. 트로츠키와 중공 상하이·광둥 위원회는 이 타협에 반대했으나 스탈린은 지지했다.

관련 인물

관련 역사 사건

출처

  1. 위키백과 (영문)
  2. zh.wikipedia.org
  3. 위키백과 (영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