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지코프는 제22차 당대회 결의에서 반당 그룹에 대한 언급이 스탈린 개인숭배 비판보다 거의 네 배 많았다고 지적했다.
알렉산드르 블라디미로비치 피지코프는 1965년 11월 27일 모스크바주 라멘스코예에서 태어나 2019년 9월 16~17일 밤 모스크바에서 폐색전증으로 사망한 러시아 역사학자이자 국가 관료다. 1998년 후보 학위, 1999년 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2003~2004년 러시아 연방 교육부 차관을 지녔다. 말년에는 17세기 교회 분열과 구신도 연구로 널리 알려졌는데, 구신도가 혁명과 소비에트 체제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주장은 구신도계 안에서도 평가가 갈렸다. 타타르-몽골 지배 부정 같은 음모론적 문명사 구상으로도 논란을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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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모스크바주 교육대학 역사학부 졸업
1989년부터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 마르크스-레닌주의 연구소 당사 부문 연구원
19981953~1964년 소련 사회의 사회정치 발전으로 역사학 박사학위 취득
19991950~1960년대 소련 사회의 정치개혁으로 역사학 박사학위 취득
2000러시아 연방 통신정보부 장관 보좌관
2000–2003러시아 연방 정부 의장 보좌관
2003.6.5–2004.6.18러시아 연방 교육부 차관으로 교육의 질 관리와 기관 국가인가를 담당
중동부 유럽의 권위주의적 쇼비니즘의 뿌리는 정치이론이 아니라 정치심리학에 있다, 1989년 이후 '모방 명령'에 대한 뿌리 깊은 혐오감 말이다.
불가리아의 정치학자이자 소피아 자유전략센터 이사장. 1989년 이후 동유럽 정치를 '모방의 시대'로 규정하고, 서구를 따라야 한다는 탈냉전의 명령이 오히려 민족주의적 반발과 일리버럴 전환을 초래했다고 분석했다. 스티븐 홈스와 함께 쓴 『빛의 실패』(2019)는 이 '모방 명령' 논제를 정치심리학으로 전개하여, 동유럽 포퓰리즘의 뿌리가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문화적 굴욕감에 있다고 주장했다. 유럽외교협의회 창립 이사이자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로, 탈공산주의 30년의 유산 논쟁에서 독창적 분석 틀을 제공한 지식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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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불가리아 루코비트 출생
1990년대소피아 자유전략센터(CLS) 설립·이사장
2004–2006국제발칸위원회 사무총장
2005–2011《포린 폴리시》 불가리아판 편집장
2007유럽외교협의회(ECFR) 창립 이사
2013『불신을 믿으며: 지도자를 믿지 않을 때 민주주의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TED Books)
우크라이나·러시아·벨라루스의 기록보관소를 10년간 뒤져 핵 경관 연구를 다시 쓴 MIT의 과학·환경사학자. 『플루토피아』(2013)로 핸퍼드와 마야크의 플루토늄 재앙을 폭로해 러시아·미국·환경사 분야 최고상을 휩쓸었고, 내셔널 북 크리틱스 서클 최종후보작 『생존 매뉴얼』(2019)에서는 IAEA와 체르노빌 포럼이 오염 식품을 통한 내부피폭 경로를 배제해 수만 명의 사망을 은폐했다고 주장했다. 이 비판은 국제적 합의에 대한 중심적 역사학적 도전이 되었으며, 냉전기 핵 기관들이 저선량 방사선의 과학 자체를 형성해왔다는 문제 제기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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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메릴랜드대 볼티모어카운티 캠퍼스(UMBC) 교수 부임
2004『장소 없는 전기』 출간, 미국역사학회 조지 루이스 비어상 수상
2013『플루토피아』 출간, 러시아·미국·환경사 분야 최고 학술상 석권
2015『디스토피아에서 온 소식』 출간, 구겐하임·카네기 펠로십 수상
2018MIT 과학기술사회학과 교수 부임
2019『생존 매뉴얼』 출간, 내셔널 북 크리틱스 서클상 최종후보 및 ASEEES 젤닉상·슐먼상 수상
스탈린의 스페인에서의 위치를 약점이 아니라 강점에 기반한 것으로 접근해온 것이 이 주제 문헌의 기본적 오류라고 그는 논했다.
오리건 번스 출신. 위스콘신대학-매디슨에서 스탠리 G. 페인의 지도 아래 2001년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4년 『스탈린과 스페인 내전』(Columbia University Press)을 출간하여, 기밀해제된 소련 문서를 바탕으로 스탈린의 작전 X가 '엄청난 야심에도 불구하고 작전상 실패'였음을 논증했다. 벨파스트 퀸스대학에서 유럽사와 홀로코스트를 가르치며 전간기 유럽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러시아의 우주 담당 관리들조차 시디키를 전 세계에서 소련 우주사 기록을 직접 연구하는 몇 안 되는 학자 가운데 하나로 인정했다.
다카 출생의 방글라데시계 미국인 역사가 시디키는, 소련 붕괴 후 개방된 기록물을 처음으로 체계 분석하여 소련 우주사 연구를 독립된 학문 분야로 정립했다. 2000년 NASA가 출간한 『Challenge to Apollo』는 소련 유인우주계획의 결정적 기록사로서 『월스트리트저널』 선정 '우주탐사 최고의 책 5선'에 오른 이후 지금까지 표준문헌으로 남아 있다. 2010년 『The Red Rockets' Glare』로 19세기 러시아 우주적 상상력의 문화사까지 영역을 넓혔고, 현재는 굴라그와 과학기술의 접점을 다룬 저작을 준비하며 포덤대학 교수로 있다.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에서: '소비에트 러시아는 선진 기술을 빠르게 따라잡으며 급속한 성장을 이루었지만, 창조적 파괴가 부재했기 때문에 1970년대에 이르러 힘이 빠지고 있었다.'
이스탄불의 아르메니아계 가정에서 태어나 MIT 경제학 교수가 된 다론 아제모을루는, 국가 간 번영 격차의 제도적 기원을 규명한 공로로 2024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제도경제학의 대표적 학자다. 로빈슨과 함께 쓴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2012)에서 소련 계획경제 아래 가격은 실물 가치와 유리되어 혁신을 평가할 수 없고, 상여금이 총임금기금에 연동되어 기업이 자동화를 기피하게 되므로 코시긴 개혁은 구조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고 분석했다. 그의 연구는 포용적 제도 없이 지속적 경제성장은 불가능하다는 통찰로 발전경제학과 정치경제학에 폭넓은 영향을 미쳤다.
제정 러시아의 민족지학자들이 볼셰비키 국가의 영토 구획과 인구 범주화를 실질적으로 설계했다는 연속성 테제로, 탈소비에트 시대 소련 민족 연구의 지형을 재편했다.
미국의 러시아·소련사 연구자로, 위스콘신대학교 사학과 교수이다. 2005년 저서 『제국들의 민족지』에서 전직 제정 민족지학자들이 볼셰비키에 제공한 지식이 소련의 영토 경계와 민족 정책을 형성했으며, 소련은 제국의 민족지 관행을 단절하지 않고 계승했다는 연속성 테제를 제출했다. 이 저서는 허버트 백스터 애덤스 상을 수상하며 테리 마틴의 『차별적 조치의 제국』이 내세운 소비에트 민족 정책의 참신함 테제와 대비되는, 소련 민족 연구의 양대 해석 축으로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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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Princeton University 역사학 박사
1998–현재University of Wisconsin–Madison 사학과 교수
2005『Empire of Nations: Ethnographic Knowledge and the Making of the Soviet Union』 출간 (Herbert Baxter Adams Prize, Wayne S. Vucinich Prize 수상)
2020『Soviet Judgment at Nuremberg: A New History of the International Military Tribunal After World War II』 출간
1998년 BBC 루안다 특파원으로 앙골라 내전을 취재한 경험이 훗날 1977년 5월 27일 사건을 파고드는 계기가 되었다.
영국 런던 태생의 기자·작가다. 런던대학교 SOAS에서 아프리카 정치·역사를 공부했고, 1996년부터 2007년까지 BBC 월드서비스 기자로 앙골라·코트디부아르·말리·가나 등지에서 활동했다. 1998년부터 BBC 루안다 특파원으로 앙골라 내전을 취재한 것이 훗날 1977년 5월 27일 사건 조사의 계기가 되었다. 2014년 『인민의 이름으로: 앙골라의 잊힌 학살』을 펴냈는데, 이 사건에 관한 기록보관소·공식 문서가 거의 남아 있지 않아 인터뷰를 중심으로 서술했고, 학술 역사서가 아니라 자신의 정치적 견해와 자기 의문까지 드러내는 연구 과정의 기록으로 썼다. 이후 회고록과 소설을 발표하고 로열할러웨이에서 창작을 가르쳤다.
애덤 히긴보섬은 1968년 잉글랜드 서머싯에서 태어난 영국 저널리스트이자 논픽션 작가다. 런던의 잡지와 신문에서 출발해 「더 페이스」 편집장과 「선데이 텔레그래프 매거진」 미국 특파원을 지냈고, 「뉴요커」, 「와이어드」, 「뉴욕 타임스」 등에 기고했다. 대표작 「체르노빌의 한밤중」은 십여 년에 걸친 수백 시간의 인터뷰와 서한, 미출간 회고록, 비밀 해제 문건을 토대로 선전과 비밀주의, 신화가 참사를 어떻게 가렸는지 밝힌다. 이 책으로 2020년 윌리엄 E. 콜비상과 앤드루 카네기 논픽션 우수상을 받았고, 2024년에는 「챌린저」로 커커스상과 전미도서비평가협회 논픽션상을 받았다. 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했지만 스스로는 역사가보다 저널리스트이자 작가로 자리매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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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더 페이스」 편집장
1990년대–2000년대「선데이 텔레그래프 매거진」 미국 특파원
2000년대–현재「뉴요커」, 「와이어드」, 「뉴욕 타임스 매거진」 기고 작가
2019「체르노빌의 한밤중」 출간
2020앤드루 카네기 논픽션상 및 윌리엄 E. 콜비상 수상
2024「챌린저」 출간
2024「챌린저」로 커커스상 및 전미도서비평가협회 논픽션상 수상, 2025년 카네기 논픽션상 최종 후보
인도에서 태어나 미국 시민이 된 의사이자 보건경제학자로, 의학적 증거와 공공정책·인구 건강의 관계를 연구했다. 정부 프로그램과 경제 조건, 의생명 혁신이 건강 결과를 어떻게 바꾸는지 분석했다. 2013년 고르바초프 반알코올 운동 연구에서는 자본주의 이행만이 아니라 운동의 종결이 1990년대 초 러시아 사망률 위기의 큰 몫을 설명한다고 주장해 탈소비에트 평가의 쟁점을 바꾸었다. 코로나19 시기에는 방역 제한과 과학 권위를 둘러싼 논쟁적 공적 발언으로 주목받았다.
브랜든버거는 2004년 논문에서 레닌그라드 사건의 배후에 '러시아 공산당 창당' 루머가 결정적 변수로 작용했다고 주장해, 정치적 파벌 투쟁으로 보는 기존 해석에 이데올로기적 차원을 추가했다.
버지니아 리치먼드대학 러시아·소련사 교수. 스탈린 시대 선전·이데올로기와 러시아 민족 정체성의 형성을 연구하며, 『국가 볼셰비즘』(2002)에서 스탈린의 루소중심적 동원 선전이 의도치 않게 근대 러시아 민족 정체성을 낳았다고 주장했다. 현재 집필 중인 『스탈린의 후계자 후보들 숙청』은 레닌그라드 사건(1949~1952)에 관한 20여 년의 연구로, 파벌 투쟁·스탈린의 레닌그라드 불신·후견-의뢰 네트워크의 자초라는 세 해석 학파를 정리하면서도 결정적 판단을 내리기에는 아카이브가 여전히 폐쇄적이라고 본다.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 뒤 동유럽을 여행한 경험은 그녀가 체제전환의 희망과 비용을 함께 연구하게 한 전환점이었다.
크리스틴 고드시는 미국의 인류학자이자 동유럽 연구자로, 사회주의와 체제전환이 평범한 사람들, 특히 여성의 삶에 남긴 흔적을 민족지학으로 연구했다. 불가리아 현지조사를 바탕으로 사회주의의 성과와 체제전환기의 상실을 함께 살피며, 반공 승리 서사가 지워 온 물질적 경험을 복원했다. 미첼 오렌스타인과 함께 쓴 『충격의 재고』는 1989년 혁명 이후 동유럽의 경제·사회 지표를 비교해 전환의 이익이 불균등하게 분배되었음을 분석했다. 그의 작업은 사회주의를 미화하지 않으면서도 자본주의 전환의 결과를 경험 자료와 주민의 목소리로 평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탈스탈린화의 기억 정치를 연구한 역사가로서, 스탈린 사후 권력 투쟁을 풍자한 아르만도 이아누치의 영화 「스탈린의 죽음」(2017)에 역사 자문을 맡았다.
폴리 존스는 러시아·소비에트 문화와 권위주의 사회의 기억 정치를 연구하는 영국 역사가다. 그녀의 연구는 1956년 비밀 연설 이후 탈스탈린화가 당국의 개혁만이 아니라 작가와 시민들이 검열과 공식 기억을 협상한 과정이었음을 보여 준다. 대표 저서와 편저는 흐루쇼프 시대의 문화·사회 변화, 스탈린주의 과거의 신화와 기억, 해빙기의 이상과 실제 반응 사이의 긴장을 분석한다.
페로비치는 새로 개방된 동구권 문서에서 티토의 발칸 영토 야망(특히 알바니아 문제)이 1948년 모스크바와의 결별을 촉발했으며, '유고슬라비아식 사회주의 노선'은 사후 정당화된 신화였음을 입증했다.
스위스의 역사학자이자 정치학자로, 취리히 대학교 동유럽사 교수 겸 동유럽학 센터(CEES) 소장이다. 2007년 《냉전연구》에 발표한 「티토-스탈린 결별: 새로운 증거에 비추어 본 재평가」에서, 기존의 '유고슬라비아식 사회주의 노선'이라는 통념을 뒤집고 티토의 발칸 영토 야망(특히 알바니아 병합 시도)이 분열의 실질적 원인이었음을 구소련권 문서로 입증했다. 북캅카스사, 소련 에너지 외교사 등에서도 주목할 저작을 남겼으며, 『코카서스 분석 다이제스트』 등 온라인 학술지를 창간·편집하며 동유럽 연구의 대중적 확산에도 기여했다.
고향 마르키우카에 정착한 러시아 이주민 401가구 가운데 329가구가 1년 안에 돌아갔다는 자료를 들어, 그 정착이 오늘날 돈바스 분리주의의 뿌리라는 통설을 근거 없는 신화라고 반박했다.
헤나디 예피멘코는 20세기 전반 소비에트 우크라이나의 정치·사회사를 연구한 우크라이나 역사가다. 그는 홀로도모르 이후 농촌 재정착을 두 차례 파동으로 나누어 분석하고, 국가가 곡물 생산 기반을 회복하려 경제적으로 추진한 정책과 이주민의 대규모 귀환을 함께 밝혔다. 그의 연구는 인구 이동을 민족 구성의 단순한 변화로 과장하지 않고, 기근 뒤 농촌의 노동력과 국가 통치가 맞물린 문제로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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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1994루한스크 국립 교육기관 역사학부에서 수학
1993–1997마르키우카 중등학교 역사 교사
1997–2000우크라이나 역사연구소 대학원
2001「1932~1938년 소비에트 우크라이나에 대한 전연방공산당의 민족·문화 정책」으로 역사학 박사학위 취득
2000–현재우크라이나 국립과학원 역사연구소 20~30년대 우크라이나사 부문 연구원
2013「기근 이후 시기 이주와 추방」에서 1933~1934년 재정착의 지역별 자료를 체계화
“우리에게는 놀라운 일이었다 … 처음에는 믿을 수 없었지만, 그것이 데이터가 보여주는 사실이다.”
낸시 치안은 개발경제학·정치경제학·경제사를 넘나들며 제도와 정책이 사람들의 삶에 미치는 효과를 대규모 자료와 엄밀한 실증분석으로 연구한 경제학자다. 중국 경제와 권위주의 국가를 다룬 연구로 알려졌으며, 성별 격차와 교육, 기근의 정치경제를 연결해 분석했다. 안드레이 마르케비치, 나탈랴 나우멘코와 함께한 2021년 연구는 우크라이나 기근의 지역별 사망률과 곡물 조달을 비교해 민족적 편향과 중앙계획 조달정책의 역할을 계량적으로 제시했다. 이 작업은 홀로도모르를 생산량만이 아니라 국가의 분배와 강제 조달이 빚은 결과로 파악하는 논쟁에 자료를 보탰다.
수시코프는 '레닌그라드 사건'의 진짜 동인이 파벌 항쟁이 아니라 레닌그라드 지도부가 비밀투표 제도를 무력화한 데 있다고 주장했다.
안드레이 수시코프는 소련 시기 당·국가 권력체계와 지역 노멘클라투라의 통치 실천을 연구해 온 러시아 역사가다. 우랄 연방관구 기록보존소를 비롯한 여러 지역의 문서고에서 발굴한 1차 자료를 바탕으로, '레닌그라드 사건'의 주된 동인이 엘리트 간 권력투쟁만이 아니라 레닌그라드 지도부의 만연한 부패와 공적 자원의 사적 유용이었다는 대안적 해석을 제시했다. 2018년 저서 『'레닌그라드 사건': '혁명의 요람'에 대한 총숙청』은 이 문제를 가장 체계적으로 다룬 연구로 평가받으며, 전후 스탈린주의 정치사 연구의 주요 논쟁점을 재구성했다.
리테르는 기록보관소 자료를 들어, 헝가리군이 남부 방어선을 쌓은 것은 티토 침공이 아니라 유고슬라비아를 거쳐 들어오는 서방의 공격을 막기 위함이었다고 반박했다.
리테르 라슬로는 헝가리의 현대사 연구자로, 정보기관·국가안보와 헝가리-유고슬라비아 관계를 주로 연구했다. 그는 티토-스탈린 분열 뒤 소련이 유고슬라비아를 침공할 계획을 세웠다는 키라이 벨러의 회고를 헝가리와 국제 기록보관소 자료로 재검토했다. 그의 연구는 당시 헝가리군의 남부 방어와 전면전 대비를 침공 준비와 구별하며, 스탈린의 군사적 의도를 둘러싼 사료적 불확실성을 드러낸다.
2021년 연구는 기근 사망률의 지역 격차가 식량 생산성보다 민족적 편향과 더 밀접하다고 제시했다.
안드레이 마르케비치는 러시아 경제사를 통계와 제도 분석으로 재구성해 온 역사경제학자다. 그는 러시아 제국과 소련의 국가, 시장, 산업화, 계획을 장기 자료로 분석했으며 러시아신경제학교에서 연구와 교육을 이끌었다. 2021년 나탈리야 나우멘코, 낸시 치안과 함께한 연구는 1932~1933년 기근에서 우크라이나인의 높은 사망률이 식량 생산만으로 설명되지 않으며, 민족적 편향이 반영된 조달 정책과 이동 제한이 사망을 키웠다고 분석했다. 이 작업은 대규모 지역 자료를 통해 기근의 경제적 메커니즘과 국가 정책의 책임을 함께 묻는다.
이데올로기적 불일치는 권력투쟁의 덮개에 불과했으며… 그 안에서 이데올로기는 수단일 뿐이었다.
세르게이 라드첸코는 소련 출신 영국 역사학자로, 냉전 시기 중소관계와 소련 외교정책을 연구해 왔다. 첫 저서 『하늘의 두 태양』(2009)은 중소분열의 원인을 이념보다 동맹 내 구조적 불평등과 중국의 민족적 굴욕감에서 찾으며, 이데올로기를 중시한 로렌츠 뤼티의 해석에 대한 주요 반론으로 자리 잡았다.
"소련 경제는 하나의 대상으로 간주할 수 있고, 간주해야 한다"며 사프로노프는 그 역사를 중앙집권과 분권의 순환으로 읽는다.
알렉세이 사프로노프는 러시아의 경제학자이자 역사가로, 소련 경제의 전 시기를 장기적 관점에서 연구한다. 그는 코시긴 개혁을 자유화와 컴퓨터화의 단순한 대립으로 보지 않고, 경제·수학적 방법과 물질적 유인을 결합하려 한 계획경제 개혁으로 해석한다. 그의 분석은 1965년 개혁의 구상이 당대의 통념보다 보수적이었으며, 실행의 불철저함이 성과와 한계를 함께 만들었다고 강조한다.
티라나 대학 역사학과 강사 출신으로 지금은 같은 대학 과학담당 부총장을 맡고 있는 알바니아 현대사 연구자다. 2017년 논문에서 제2차 세계대전이 1944년 공산 통치를 정당화했기에 사회주의 역사서술의 중심 주제였고, 역사 저술이 마르크스-레닌주의 원칙과 당 노선 이행을 감시하는 당 기관이 통제하는 중앙집권적 과정이었음을 밝혔다. 1990년대 이후 국가사 전반이 개정되며 전쟁사도 수정돼 역사 저술이 외부 역사가들이 참여하는 개방적 과정이 되었으나, 전시 서술은 정치·군사사와 민족 대서사의 지배를 벗어나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2025년 연구에서 피보바로프는 산업부 복원이 명목상 중앙집권화였지만 기업에 대한 실질적 권한은 없었다고 밝혔다.
니키타 피보바로프는 소련 경제사와 산업관리 제도의 변화를 연구하는 러시아 역사가다. 그는 러시아 대통령 국가경제·행정 아카데미의 응용역사 연구센터에서 선임연구원으로 일하며, 문서와 제도 설계를 통해 후기 소련 개혁을 분석한다. 2025년 연구에서 그는 코시긴 개혁의 산업부 복원을 추적해, 브레즈네프와 코시긴의 충돌 속에서 중앙집권화가 처음부터 절충된 형태였고 산업부가 기업을 실질적으로 지휘할 권한을 갖지 못했다고 논증했다.